세계일보

검색

日 원폭도시, 교황·올림픽 통해 ‘비핵화 성지’로 거듭난다 [세계는 지금]

관련이슈 세계는 지금

입력 : 2019-07-27 16:00:00 수정 : 2019-07-27 11:33: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히로시마·나가사키 2020년 피폭 75주년 맞아 ‘평화 메시지’ / ‘핵무기 폐기’ 앞장 교황 11월 방일 / 가톨릭 신도 가장 많은 나가사키서 / 참화 실상 알리고 평화 기원할 듯 / 두 도시, 정부에 핵무기금지조약 요구 / 2020년 올림픽 기간 도쿄서 원폭전 개최 / 원폭 투하된 8월9일 폐막… 묵도 희망
“그때였습니다. 반짝하는 섬광이 구석구석을 비추는가 싶더니 폭풍이 불어와 우리 아이들을 이곳저곳으로 날려버려 바위에 부딪혀 기절했습니다. 누군가 머리를 때려 깨어났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방공호 속에는 검게 타버린 사람,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투성이가 된 사람, 눈알이 튀어나온 사람, 화상을 입고 몸이 두배, 세배로 부푼 사람들이 잔뜩 들어와 있었습니다. 물 좀 주세요, 도와주세요라는 비통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나는 무서워서 몸이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시모히라 사쿠에 당시 10세 소녀)


1945년 8월9일 오후 11시2분. 일본 나가사키(長崎)시 상공 500m에서 미국의 B-29 폭격기가 투하한 원자폭탄이 폭발했다. 지구 최후의 날인 듯 머리 위에서 뿜어져 나온 핵 열선, 핵폭풍, 방사선에 하루하루 각자의 소중한 삶은 살아가던 수많은 인생이 한순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나가사키시 인구 24만명 중 사망 7만3884명, 중·경상자 7만4909명. 그중 1만2000∼2만2000명은 강제연행돼 끌려온 노동자 등 재일 한인이다.

 

폭격기는 원래 나가사키에서 동북쪽으로 150㎞ 떨어진 고쿠라(小倉)시(현 기타큐슈시에 속함)를 노렸다. 소이탄(燒夷彈)의 연기로 시야가 불량하자 목표를 나가사키로 변경했다. 나비의 날갯짓 같은 우연에 운명이 좌우되니 인간이란 존재는 얼마나 가벼운가.

앞서 8월6일 인류 역사 최초의 원폭이 히로시마(廣島)에 떨어졌다. 지난 17∼18일 찾은 히로시마의 원폭돔(원래 명칭 산업장려관)과 나가사키의 가톨릭 교회 잔해는 그날의 참상을 보여준다. 아시아·태평양을 침략과 전쟁의 참화에 몰아넣은 일본 군국주의의 무한 질주는 원폭 두 방을 맞고서야 멈춰 섰다. 원폭은 아시아 민중을 전화(戰禍)의 구렁텅이에서 건져줬으나 동시에 일본의 민초를 ‘폭화(爆禍)’의 고통에 밀어 넣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피폭지(被爆地)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시가 원폭 투하 75주년이자 도쿄올림픽을 열리는 2020년을 맞아 핵무기 없는 세계의 중요성을 알리는 평화 메시지 발신을 준비 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특히 지구촌 가톨릭교의 수장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11월 일본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져 두 도시의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핵무기 폐기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교황이 이곳에서 세계를 향해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교황의 일본 방문은 지난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어 두 번째가 된다.

사실 16세기에 가톨릭교가 전파된 나가사키시는 일본 가톨릭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일본은 현재 가톨릭 신자 수가 전체 인구의 0.34%에 불과한 43만4000명 정도로 교세가 약한 나라다. 그런데 나가사키교구의 신도는 6만명으로 인구의 4.3%에 달한다. 일본 16개 교구 중 신도수가 가장 많고 인구 대비 신도 비율도 다른 어느 지역보다 높다.

 

원폭 투하로 파괴됐다가 재건된 우라카미 천주교당. 나가사키=김청중 특파원

이 지역 가톨릭교의 상징이 바로 1925년 건설된 우라카미(浦上) 천주교당이다. 당시 성당과 신도도 원폭의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폭심지(爆心地·그라운드제로)에서 500m 떨어져 있던 성당은 원폭에 무너져내렸고 당시 신도 1만2000명 중 8500명이 폭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성당의 잔해로 남은 벽의 일부가 폭심지로 옮겨져 원폭의 참화를 알리는 상징이 되고 있다. 다카미 미쓰아키(高見三明·73) 일본가톨릭사교(司敎)협의회장(나가사키대교구 대주교)은 “어떤 전쟁에든 병기가 사용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규모가 다르다”며 “미국이 지금도 원폭의 결과를 미국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히로시마·나가사키시는 해마다 각각 평화선언을 발표하며 핵무기 없는 세상의 희망을 전파하고 있다. 두 도시는 또 핵무기금지조약에 미온적인 일본 정부에 조약 서명을 요구하고 있다. 마쓰이 가즈미(松正一實) 히로시마시장은 “비인도적 무기인 핵무기를 세계는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며 “평화시장회의(Mayors for Peace)등을 통해 핵무기 근절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평화시장회의는 1982년 유네스코 산하에 발족한 국제평화네트워크로 163개국 7772개 도시가 참여하고 있다. 히로시마시장이 의장이고, 나가사키 등 14개 시장이 공동 부의장을 맡고 있다.

 

좌측부터 마쓰이 히로시마 시장, 다우에 나가사키 시장

다우에 도미히사(田上富久) 나가사키시장은 동북아비핵화구상을 제시했다. 다우에 시장은 “남북한과 일본을 동북아비핵화지대(Nuclear Weapon-Free Zone)로 선포하고, 미국·러시아·중국과 같은 주변국이 3국을 핵무기로 공격하지 않겠다고 보장함으로써 성립되는 지대를 만들자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두 도시는 내년 올림픽 기간(7월24일∼8월9일) 도쿄에서 원폭전을 공동 개최하는 등 피폭 75주년을 맞아 핵무기의 위험성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할 예정이다. 다우에 시장은 “올림픽 기간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날이 들어있다”며 “특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진) 8월9일은 폐회식이어서 (희생자를 기리는) 묵도(默禱)가 가능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나가사키·히로시마=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뉴진스 다니엘 '반가운 손 인사'
  • 뉴진스 다니엘 '반가운 손 인사'
  • 박규영 '아름다운 미소'
  • 오마이걸 아린 '청순&섹시'
  • 임지연 '여신의 손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