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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소송… 갈등 부르는 태양광사업 [심층기획 - 빛 잃은 태양광]

입력 : 2019-11-04 06:00:00 수정 : 2019-11-03 23: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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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개인 상업용 시설 4만여개 / 매년 축구장 4000개 국토 훼손 / 지자체·업체·주민간 이해 얽혀 / 인허가 현장 어김없이 싸움판 / 경북 청도 태양광 발전소 옹벽 / 태풍·장마 호우에 붕괴 잇따라 / 정부 경사도 제한 등 늦은 대처 / 주민들 시설 건립 놓고 찬반대립 / 지자체마다 설치 조례 천차만별 / 법원도 판결 제각각 혼란 가중
3일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위해 숲이 잘려나간 전남 고흥군 남성리 인근 야산의 정상이 흙과 돌무더기로 가득하다. 작은 사진은 전남 장성호 주변에 수상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 고흥=한승하 기자, 장성호 태양광설치반대주민위 제공

지난달 14일 전남 장성군의회 김미순 의원실에서는 막말과 고성이 오갔다. 이날 장성호 수상 태양광 설치를 찬성하는 추진위원회 위원 20명이 김 의원을 향해 “의원 배지를 떼라”며 한바탕 소란을 피웠다. 며칠 전 “합성세제로 태양광 패널을 세척한다”는 김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고 “이렇게 무식할 수 있느냐”며 따졌다. 옆방에 있던 이태신 동료의원이 김 의원실을 찾아 사태를 수습하려 했으나 오히려 더 큰 폭력을 부르고 말았다. 이 의원과 위원들이 거친 말다툼 끝에 서로 멱살잡이를 한 것이다. 이를 지켜보던 김 의원은 실신해 병원으로 실려 갔다. 전치 3주의 상해진단서를 끊은 이 의원은 멱살잡이한 위원들이 사과하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인구 4만5000여 명의 조용하던 장성군이 장성호에 수상 태양광 설치를 놓고 발칵 뒤집혔다. 지역민의 민심이 갈린 것은 지난 5월 광주의 한 태양광업체가 장성 북하면사무소에서 사업설명회를 개최하면서부터다. 이 업체는 장성호에 1500억원을 투자해 75㎿ 규모의 수상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겠다고 제안했다. 태양광 발전소가 설치되는 면적만 75㏊에 이른다. 이 업체는 파격적인 ‘당근’도 제시했다. 20년간 256억원의 마을발전기금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이때부터 장성호 주변 반경 500m에 있는 7개 마을 500여 주민들은 찬반으로 의견이 갈렸다. 태양광 발전소 설치 반대 위원회가 먼저 꾸려졌다. 박장수 위원장은 “40년 전 수몰로 마을을 잃은 주민들은 장성호를 활용해 관광지로 조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호수에 태양광이 설치되면 환경이 훼손될 뿐 아니라 누가 이곳을 관광지로 여기고 찾아오겠느냐”고 토로했다.

 

태양광 발전소 설치로 마을 발전을 기대하는 주민들은 찬성 위원회를 구성했다.

 

북하면 이장단협의회에 속한 이장들은 박삼수 이장단협의회장을 위원장으로 추대했다. 박 위원장은 “장성호 건설로 주민들의 피해가 이만저만 아닌데, 이번 기회에 지역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갈리면서 다정다감했던 이웃사촌의 인심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가뭄에 장성호의 바닥이 갈라지는 것처럼 시골 민심도 쩍쩍 갈라져 버렸다. 장성군뿐이 아니다. 태양광 발전소 인허가가 추진되는 전국 현장에는 어김없이 사업자와 주민, 지자체 간의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태양광 싸움판’이 장기화하고 있다.

 

◆주민·사업자·지자체 간 툭하면 소송

 

전북 무주군 적상면 포내리 중리마을은 태양광 발전소 설치를 놓고 시행업체와 주민, 지자체가 10개월째 대립하고 있다. 시행업체는 지난해 12월 포내리 일대 2만4915㎡에 설비용량 2343㎾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하겠다며 무주군에 허가 신청서를 냈다.

허가 신청 사실이 알려지자 먼저 주민들이 나섰다.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설 지역은 급경사면의 산악지형으로 평소에도 토사 유출이 빈번한 곳이다. 집중호우라도 내릴 경우 마을 전체가 매몰되거나 유실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주민들은 반대 대책추진위를 구성해 무주군에 탄원서를 제출하고 수차례 반대 집회를 가졌다. 무주군은 표고 차가 ±100m를 넘을 경우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할 수 없다는 조례를 근거로 지난 7월 허가 신청서를 반려했다. 허가 신청지역은 표고 차가 ±115m로 조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행업체는 무주군의 허가 신청서 반려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지난 8월 다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강원 화천군에서는 투자자와 사업주 간의 소송전이 벌어지고 있다. 2017년 말쯤 사업주는 투자금을 받아 9900㎡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반발로 허가를 받지 못하자 투자자들은 투자한 농지전용분담금 등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사업주 측은 이미 허가과정에서 초기비용이 과다하게 투입됐다며 거절해 결국 소송으로 이어졌다.

3일 자치단체와 법원 등에 따르면 태양광 발전소 사업과 관련한 전국의 행정소송은 2014년 7건에서 지난해 102건으로 증가했다. 최근 3년간 행정소송이 가장 많은 지자체는 경남(70건)과 충남(60건)이다. 태양광 발전소 허가를 둘러싸고 툭하면 소송을 불사하는 추세다. 강원 고성군의 경우 최근 3년간 294건이 접수돼 142건은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불허가 51건 가운데 소송을 제기한 건수는 무려 13건에 달한다.

 

소송은 주로 마을 주민들의 태양광 설치 반대 집회에서 시작된다. 지자체는 민원의 소지가 있는 주민들의 동의를 허가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사업자와 갈등을 겪게 된다.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하게 되는 사업자 측은 행정소송으로 맞서면서 수년간 지루한 공방을 벌이게 된다. 법원은 이 같은 태양광 행정소송에서 반대 민원이 있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는 지자체의 요구는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태양광 설치로 환경파괴와 자연재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지자체의 손을 들어주는 추세다.

 

◆자고 나면 태양광… 매년 축구장 4000개 농지 및 산림 훼손

 

지난달 30일 찾은 전남 고흥군 남성리 인근 야산 정상은 더 이상 ‘산’이 아니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은 이미 다 잘려나가 민둥산으로 변했고 산허리부터 맨땅을 허옇게 드러냈다. 정상까지 차량이 드나들 수 있는 수백여m에 이르는 굽은 길은 ‘흉물’ 그 자체였다. 지난해 6월부터 태양광 발전소 사업 허가를 받은 30만㎡의 거대한 산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 이곳에 태양광 발전소가 완공되면 2㎿의 전력이 생산된다.

 

하지만 5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의 주민들은 훼손되는 산림을 보면서 한숨만 내쉬고 있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숲이 그동안 상습 침수를 막아줬는데 이제 물난리를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 태산이다.

 

태양광 발전소는 멀쩡한 농지와 산지를 야금야금 삼키고 있다. 태양광 발전소 건설로 사라진 농지는 2012년 34㏊에서 2017년 1437㏊로 5년 만에 44배나 증가했다. 산지 전용면적도 2014년 176㏊에서 지난해 2443㏊로 크게 늘었다. 지난 3년간 태양광 발전소 건립으로 사라진 농지는 여의도 면적 20배인 5618㏊, 산지 훼손 면적은 4407㏊다. 이는 축구장 1만2000개와 맞먹는 규모다. 농지와 산림뿐이 아니다. 전국의 호수와 저수지는 수상 태양광 발전소 건립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처럼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지난 한 해 동안 설치된 태양광 발전소 규모는 2027㎿로 1998∼2017년 누적 보급량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개인 상업용 태양광 시설은 현재 4만여개인데, 5년 후에는 20만개로 폭증할 전망이다. 태양광 발전소 ‘전성시대’를 맞고 있는 셈이다.

 

태양광 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태풍이 오고 장마철이 시작되면 커질 산사태 위험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2014년과 2015년 경북 청도군 한 야산의 경사면을 깎은 뒤 1만2400㎡와 1만4700㎡ 부지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소의 옹벽 20m가 지난 7월 태풍 ‘다나스’가 동반한 집중호우로 처참히 붕괴됐다. 지난해 6월 장마에 이미 옹벽이 무너져 내려 청도군이 복구공사 명령을 내렸지만 제때 보수를 하지 않아 1년 만에 또 붕괴한 것이다. 주민 김모씨는 “복구를 해도 더 많은 비가 내리면 옹벽 붕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거대한 산사태가 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며 불안감을 호소했다.

 

이처럼 태양광 시설이 우후죽순으로 걷잡을 수 없이 생겨나자 정부는 뒤늦게 태양광 발전소 확대에 ‘메스’를 가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7월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는 산지 경사도를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제한했다. 산림청은 지난해 12월 산지 사용 허가 기간을 20년으로 제한하고 기간이 만료되면 산림을 복구하도록 조치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산지 태양광 공급인증서(REC) 가중치를 0.7∼1.2에서 0.7로 낮췄다. 인허가권을 쥔 지자체는 태양광 발전소를 도로나 주거지역에서 100∼1000m 떨어져서 건설하라는 이격거리를 제한하는 조례를 잇따라 제정하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연중 선임연구위원은 “농촌 지역에 외지인들이 무분별하게 태양광 발전소를 설치하는 것은 규제해야 한다”며 “지자체마다 조례에 따라 태양광 발전소 인허가가 달라 향후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고흥·충주=한현묵·한승하·김을지 기자 han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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