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직장인 임모(28)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주말마다 집에 머무는 게 일상이 됐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에 동호회, 운동 등 기존 일정이 모두 취소됐기 때문이다. 임씨는 쉽게 할 수 있는 소일거리를 찾다가 어느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었다. 그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15일까지 1개월 동안 해당 게임을 이용한 시간을 계산해보니 무려 78시간에 달했다. 임씨는 “코로나19로 친구들과 실제로 만나기보다 게임 안에서 음성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모임을 갖고 있다”면서 “학생 때 이후로 게임에 이렇게 빠져 있던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2 공무원 박모(33)씨는 지난달 20일 게임기 ‘닌텐도 스위치’를 사기 위해 서울 용산의 전자상가를 찾았다. 상가에 도착한 그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판매점은 ‘닌텐도 스위치’를 70대가량 판매할 계획이었는데 현장에는 2000명 가까운 인파가 몰려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는 결국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박씨는 “닌텐도 품귀현상으로 여전히 구입을 못하고 있다”며 “일부 쇼핑몰은 30만원대 기계를 80만~100만원으로 부풀려 판매하는가 하면 ‘재고가 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순식간에 품절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코로나19에도 게임 산업은 끄떡없어
17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전반적으로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도 게임 산업은 상대적으로 적은 타격을 입고 있다. 집 밖에 나가지 않는 ‘집콕족’이 늘면서 여가생활로 게임을 선택하는 사용자들이 늘었다는 분석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달 18일부터 24일까지 미혼남녀 43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18.1%가 “코로나19 기간 동안 집에서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답했다. 특히 남성은 게임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응답(25.5%)이 1위를 차지했다. 여성의 경우 게임보다는 드라마나 영화를 본다는 응답(29.6%)이 훨씬 더 많았다.
증권가에서는 게임 산업을 ‘안전한 피난처(safe haven)’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창궐에도 타격을 적게 받는 산업군 중 하나라는 뜻이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달 세계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 수는 33억건에 육박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1%가 늘었다. 미국의 통신업체 버라이즌도 코로나19 방역이 본격화한 3월 2주 차에 오후 7∼11시 온라인 게임 사용률이 전주보다 75% 상승했다는 통계를 내놓았다. 일본 닌텐도사의 신작 게임기 ‘스위치’는 세계 각국에서 품귀현상이 극심하다. 중국의 코로나19 사태로 기계 생산에 일부 차질이 빚어진 이유도 있지만 최근 발매한 신작 ‘모여 봐요 동물의 숲’이 출시 열흘 만에 260만장이 팔리며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이 게임은 집에서 사람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며 즐길 만한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국내 게임사들의 약진도 눈에 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게임사 엔씨소프트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신작 게임 ‘리니지2M’의 인기에 따라 각각 7058억원, 281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6.72%, 254.26%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넷마블의 1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각각 5558억원, 49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6.38%, 45.12% 증가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15년 2분기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국내 경제가 침체했을 때에도 게임 산업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6.3% 늘었다. 진흥원 측은 “메르스 사태로 인한 여파가 콘텐츠산업 성장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며 “만화,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산업이 전년 동기 대비 10% 안팎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귀띔했다.
◆게임이 유해?…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에는 ‘권장’
‘게임이 유해하다’는 사회적 인식도 코로나19와 함께 수그러드는 모양새다. ‘게임중독’(gaming disorder)을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분류하는 등 게임에 부정적 태도를 취해 온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맞춰 집에서 하는 게임을 권장하고 나섰다. WHO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라이엇게임즈, 유니티 등 18개 게임 관련 업체들과 협력해 “떨어져서 함께 플레이하자”는 뜻의 ‘플레이 어파트 투게더’(PlayApartTogether) 해시태그 운동을 펼치고 있다. 게임사들은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 동안 특별 이벤트를 펼치고, 사용자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를 인증함으로써 외부활동 자제 분위기를 조성하자는 것이다.
‘게임중독’의 질병코드(ICD-11) 도입에 반대해 온 한국게임학회는 WHO의 이런 태도 변화에 지난 2일 성명을 내고 “WHO가 뒤늦게나마 게임의 가치를 인식하고 게임을 적극 활용하는 캠페인에 동참한 것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한국 정부도 WHO 결정을 참고해 게임을 활용한 코로나 극복 활동을 적극 전개해야 한다”며 “국내 게임사들도 그동안 소홀히 해왔던 초중고 교육용 게임 등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게임을 적극 개발해 사회적으로 기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와 일부 지방자치단체도 사회적 거리두기 권장에 게임을 활용하는 중이다. 외부 이벤트보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장려하는 차원이다. 서울 성동구는 관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오는 20일부터 ‘방구석 게임대회’를 열기로 했다. 청소년들이 모여 온라인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를 겨루는 식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인 오는 19일까지 ‘국민생각함’ 홈페이지에 ‘집콕 생활 노하우’ 사진과 영상을 등록한 참여자 중 10명한테 게임기를 선물하는 행사도 마련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 게임이 기여할 수 있지만 과한 몰입은 경계해야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정부가 국내 게임 경쟁력 육성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는 “(코로나19로) 인간이 느끼는 고립감이나 폐쇄감은 수동적인 동영상 시청보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채팅을 하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고, 이것이 바로 게임의 진정한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에 WHO가 게임에 대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는데 국내 보건복지부나 중독학회 등은 아직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국내 게임사들과 함께 코로나19 사태에 공헌할 방안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게임 같은 디지털 콘텐츠의 경우 정신적으로 주는 자극이 커 지나친 몰입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물론 있다. 최승원 덕성여대 교수(심리학)는 “게임, 유튜브 등은 작은 노력에도 사용자에 워낙 큰 자극을 주기 때문에 자연 상태로 다시 돌아가기가 쉽지 않다”며 “자제력이 약한 어린아이의 경우 중독 위험이 커 특히 부모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증상이 있을 때는 전문가 상담을 받는 조치가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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