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에 이어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방한도 연기됐다. 왕 부장은 일본을 방문하면서 방한을 함께 추진했으나 방일 계획이 조정되면서 다음주로 예상됐던 한국 방문 일정도 미뤄졌다고 한다. 왕 부장의 한국 방문 계획은 폼페이오 장관 방한에 맞대응하는 성격이 강했다. 폼페이오 장관의 방한이 무산되자 왕 부장도 방한 일정을 조정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중 외교수장의 잇단 방한 연기로 두 강대국 사이에서 이리저리 치이는 우리 외교의 현주소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국내 사정을 이유로 방한을 연기하면서 일본 방문은 예정대로 진행했다. 미국·일본·호주·인도 외교장관은 어제 도쿄에서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다자안보협의체인 ‘쿼드’ 회의를 열고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이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난다. 미·일 관계와 대비되는 한·미 관계의 불편한 현실이다.
한·중 관계도 중국에 끌려다니는 모양새다. 연기된 왕 부장의 방한은 12월 한·중·일 정상회의 관련 협의와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 조율보다는 미·중 대결 국면에서 한국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압박하려는 성격이 강하다. 중국의 입장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공고한 한·미 관계를 중국에 대한 외교적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이 쿼드 확대를 추진하며 한국 참여를 촉구하자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을 의식한 발언이다. 정부가 시 주석 연내 방한 성사에 매달리는 것도 옳은 판단이라고 할 수 없다. 중국의 외교 입지만 키울 뿐이다.
우리나라가 또다시 미·중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상황이다. ‘균형 외교’를 표방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고수해온 문재인정부가 자초한 일이다. 미·중 갈등은 소극적 태도로 대응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강대국 사이에서 눈치만 보다가는 양쪽에서 ‘패싱’당할 위험이 크다.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방향으로 외교정책의 틀을 다시 짜야 할 것이다. 원칙과 국익을 분명히 지키면서 현안별로 유연하게 대응하는 전략적 외교가 절실하다. 그런데도 우리 외교수장은 대책 마련은커녕 남편의 미국 방문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정부 외교라인 개편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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