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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병(페스트)은 공포를 부르는 이름이었다. 한번 번지면 수많은 사람이 ‘검은 주검’으로 변한다. 그 공포가 14세기 중반 유럽을 휩쓸었다.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 2500만∼6000만명이 숨졌다고 한다. 어디에서 온 재앙일까. 몽골 제국의 킵차크 군대가 퍼뜨렸다고도 하고, 십자군의 동방원정에서 옮았다고도 한다. 그런 걸까. 당시 유럽의 비위생적인 거리, 들끓는 쥐떼…. 누구를 탓할까.

흑사병은 역사를 바꾸었다. 수많은 농노가 목숨을 잃으면서 천년 봉건질서를 떠받친 장원 경제는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응했을까. 새 부리 모양의 기괴한 가면을 쓰고, 쇠막대를 든 중세 유럽의 의사. 부리 속에는 약초를 넣어 감염을 막고, 불에 달군 쇠막대로 가래톳과 정맥을 찔러 피를 뽑았다고 한다. 효과가 있었을까. 흑사병은 17세기 중반 영국을 또 초토화시켰다.

동양의 역질 대응은 어땠을까. 오십보백보다. ‘동의보감’, ‘황제내경’…. 아무리 묘방이 있어도 역질이 번지면 소용이 없다. 운명과 귀신 탓으로 돌릴 수밖에.

그런 역사를 바꾼 것은 백신이다. 1796년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에 걸린 사람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면서 천연두 백신이 만들어졌다. 백신(vaccine). 그것도 라틴어 바카(vacca·암소)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세균과 바이러스에 대항하는 인간의 면역체계는 신의 선물이다. 그 존재를 알아내 개발한 백신은 역사상 가장 빛나는 발견 중 하나다.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19. 그 종결자도 역시 백신일 수밖에 없다. 이런 말을 한다. “모든 것은 백신으로부터 시작해 백신으로 끝난다.”

백신 효과는 의료 차원에만 그칠까. 백신 강국과 백신을 구하지 못한 나라들. 우등과 열등으로 갈린다. 5월이면 국민 70%가 접종을 마치는 미국. 16년 만에 가장 높은 6.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고 한다. 14년간 이어진 어두운 ‘금융위기 침체’ 터널도 끝난다고 한다. 월스트리트저널의 글, “방역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들은 올해 ‘경제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백신을 확보하지 못한 탓이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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