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민족 갈라져 이산가족처럼 70년 살아”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들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모두 얼어붙은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혀 주목된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억제를 이유로 지난해부터 국경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 잠근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가 변수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한국 천주교 대전교구 교구장 유흥식 주교를 접견한 자리에서 방북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유 주교가 연합뉴스에 전한 바에 의하면 교황은 방북 이슈와 관련해 “같은 민족이 갈라져서 이산가족처럼 70년을 살아왔다. 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 같이 살아야 한다”며 “준비되면 북한에 가겠다”고 말했다.
앞서 교황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부터 공식 초청장이 오면 북한에 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번 발언은 방북에 관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요즘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교황의 북한 방문 추진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3년 전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잇따라 열리며 한반도 해빙 분위기가 고조되자 교황청 내부에서 교황의 방문 추진 움직임이 구체화했다. 그러나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로 모든 실무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교황은 이전에도 방북에 관해 원칙적으로 긍정적 입장을 밝혀왔다. 2018년 10월 교황청을 방문한 문 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공식적으로 초청하면 갈 수 있다”고 말했고, 지난해 11월 이임하는 이백만 당시 주 교황청 대사를 접견한 자리에선 “나도 북한에 가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억제를 명분 삼아 국경을 단단히 걸어 잠근 북한이 교황을 초청할지는 의문이다. 북한은 지난해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생한 직후 국제사회와의 교류를 전면 중단한 상태다. 경제 사정이 열악한 북한은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있으며 백신 구매 등은 엄두도 못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교황 방문이 북한에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성사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북한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부과한 제재의 완화를 틈타 경제를 재건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북한 입장에선 제재 완화에 관한 확신이 설 때 비로소 교황을 초청하려 할 테지만 교황이 대북 제재를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을 과연 설득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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