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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만난 너, 자꾸 눈이 간다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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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5-16 12:00:00 수정 : 2021-05-16 09: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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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함 벗고 캔버스가 된 공사장 가림막
광화문광장 공사장 가설울타리. 광화문광장의 이순신동상, 세종문화회관 등등이 있고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광장은 시민들의 공간이다. 편안하고 친숙한 느낌이 들게끔 디자인했다고 한다.

휴일에도 광화문광장은 공사 중이다. 공사장 곳곳에 세워진 안내문엔 차량 중심의 도시구조를 보행 중심으로 개편해 시민들의 활동과 일상 속 공원 요소가 담긴 공간으로 조성한다고 돼 있다. 공사기간은 2022년 2월 28일까지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공사장의 속살을 볼 수 없다. 안전 가림막이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흔히 공사장 가림막으로 불리는 공사장 가설울타리의 이미지가 꽤나 눈길을 끄는지 지나는 시민들이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공사장 옆을 지나지만 기분이 과히 나쁘진 않다. 가림막에 그려진 작품(?) 덕분에 그냥 공사장 가림막이 아니게끔 됐다. 지나면서도 기분이 좋고 기념촬영까지 할 정도다.

 

서울시 시민소통담당관 소통전략팀이 디자인업체와 협업해 광화문광장 공사장 가림막의 이미지를 만들었다. 광장을 걷는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그림 속에 있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이 시각적으로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이미지를 그렸다고 한다. 안전이라는 가림막 본연의 기능에 시각적인 편안함까지 더했다.

서울시내 한 공사장 가림막. 대부분 이런 모습이다. 여백이 여백으로서만 남아선 안 된다. 무언가 그려져 있고 쓰여 있다. 낙서 금지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은평구 연신내역 GTX 공사장 가림막의 포돌이의 눈에서 불빛이 비치고 있다. 관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한쪽 눈에선 불빛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에서 제작했다.
은평구 연신내역 GTX 공사장 가림막의 파발이(은평구 캐릭터, 은평구 관내와 관외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정보 및 물건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함)와 포돌이가 손전등을 들고 거리를 밝히고 있다. 이제석 광고연구소에서 제작했다.

집을 나와 거리로 나서면 온갖 감각들이 우리를 자극한다. 특히 눈으로 많은 것들을 본다. 거리에서 우리를 반기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삭막할 것만 같은 공사 현장의 가림막은 가린다는 본연의 기능과 함께 무엇을 보여주는 기능도 하고 있었다.

작품명 ‘행복한 서초구를 위한 감정전달자’ 서초구의 한 공사장 가림막에 래핑돼 있는 이미지. 서초구 공사장 가설울타리 상상디자인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지나는 시민들이 자꾸 쳐다본다. 가림막의 이미지들도 행인들을 쳐다본다. 서로 쳐다보며 소통한다.

서초구 잠원동에 건립 중인 오피스텔 공사 현장엔 또 다른 가림막이 눈길을 끈다. 웃거나 찡그리거나 약올리거나 무표정한 이모티콘이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지금 당신의 기분은 어떠냐고? 길을 걷다 자꾸만 쳐다보게 된다. 서초구 공사장 가설울타리 상상디자인 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은 ‘행복한 서초구를 위한 감정전달자’란 작품이다.

서초구의 한 공사장 가림막. 유명 그림을 배색에 집중해 재해석한 이미지들이 래핑돼 있다. 지나치며 가끔 쳐다본다. 어디선가 본 듯한 그림들이다.

“서초구는 2017년부터 관내 공사장 가설울타리를 도심 속 캔버스로 활용할 수 있는 참신하고 예술적인 아이디어 발굴을 위해 공사장 가설울타리 상상디자인 공모전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2년마다 여는데 올해 3회째입니다. 공모전 수상작들은 관내 공사장 가설울타리에 사용됩니다. 다른 구에서도 공모전과 관련해 관심을 갖고 문의를 해오기도 했습니다.” 서초구 도시디자인과 공공디자인팀 김선주 주무관의 말이다.

동대문구 전농동에 세워질 서울대표도서관 부지 가림막에 래핑된 책들의 이미지. 들쑥날쑥 키가 다른 책들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 은평구 대조동 청년 주택 신축현장 가림막에 만화가 이현세가 청년들에게 보내는 응원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시는 항상 공사 중이다. 공사장 가림막, 공사장 가벽, 공사장 가설울타리 등 명칭은 다양하지만 공사 현장을 가리는 용도로 계속 존재할 것이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가림막은 오히려 낙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공공디자인이란 측면에서 공사장 가림막의 변신은 죄가 아니다. 서울을 걷다 눈에 띄는 이미지들이 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글·사진=허정호 선임기자 hoy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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