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50인미만 기업 조사결과 93% 가능
지난 3년 동안 순차 적용… 제도도 보완”
유연근로제 확대·특별연장근로 도입
지역신보 특례보증 등 현장안착 지원
경영계 “소상공인 여전히 준비 덜 돼”
최저 임금까지 인상 땐 경영난 가중
전문가 “획일 적용 산업 경쟁력 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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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 경영계가 영세 사업장의 준비 부족을 이유로 법 위반 시 처벌을 유예하는 계도기간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고개를 저었다.
권기섭 고용노동부 노동정책실장은 1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7월이면 5∼49인 사업장에도 주 52시간제가 적용된다”며 “정부는 그간 보완된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기업들이 법을 준수하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정부는 우리 사회의 장시간 근로 관행을 개선하고 일과 생활을 균형 있게 하자는 취지로 2018년 3월 주 52시간제를 도입했다. 근로기준법상 1주 법정 근로시간 40시간에 연장 근로시간 12시간을 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골자다. 다만 기업 여력에 따른 준비기간을 감안해 그해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 적용하는 등 사업장 규모에 따라 순차적으로 시행했다. 50∼299인 사업장은 300인 이상 사업장(9개월)보다 법 위반 시 처벌을 유예한 계도기간을 1년으로 늘려준 뒤 올해 1월부터 시행했다. 5∼49인 사업장에는 계도기간 없이 일정대로 다음달 주 52시간제를 시행한다.
정부는 이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등 보완 입법이 이뤄졌기 때문에 바로 시행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5∼49인 사업장도 7월부터 주 52시간제 위반 시에는 사업주에게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다만 바로 처벌되진 않고 신고 접수 후 최장 4개월의 시정 기간이 부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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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대신 이들 사업장에 주 52시간제가 안착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방안을 마련하고, 전국 48개 지방노동관서에 구성된 ‘노동시간 단축 현장지원단’을 최대한 가동하기로 했다.
하지만 5∼49인 사업장은 여전히 주 52시간제 도입 준비가 부족하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 경제 5단체는 지난 14일 계도기간 부여 등 ‘주 52시간제 대책 촉구 관련 공동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지난해 12월 자체 조사와 올해 4월 중소벤처기업부 등과의 공동조사를 근거로 계도기간은 없다고 못 박았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 4월 5∼49인 사업장 1300개를 표본 조사했고, 이 중 93%가 ‘주 52시간제를 지킬 수 있다’고 응답했다. ‘이미 지키고 있다’는 응답은 81.6%, ‘준비 중이다’는 10.7%, ‘준비 못 한다’는 7.7%로 조사됐다.
하지만 정부가 현실과 동떨어진 조사내용을 근거로 지나친 낙관론을 펼친다는 목소리도 적잖다. 특히 영세사업장의 경우 주 52시간제 적용과 함께 내년도 최저임금 수준을 논의 중인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큰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 52시간제를 단일 적용하면 결국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쪼개는 등의) 편법과 꼼수가 난무하는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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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세업체 가뜩이나 힘든데… 업종·시기 고려없이 밀어붙이기
정부가 50인 미만 사업장에 유예기간 없이 7월부터 주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기로 한 것은 기업 규모별로 준비 기간을 충분히 제공했다는 판단에서다. ‘유연근로제’ 확대 등을 통해 주52시간 제도를 보완한 만큼 일정대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획일적으로 주52시간제를 적용하기보다 업종별, 시기별, 지역별 등으로 세분화해서 도입해야 시장의 충격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지 않을 경우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수입이 급감한 영세 중소기업들은 최저임금 부담에다 주52시간제 도입으로 경영 위기에 몰릴 수 있고, 이는 해당 업체 종사자들의 실직까지 초래할 우려가 높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16일 주52시간 계도기간 연장 요구가 커지자 “기업 여력에 따른 준비기간을 부여하기 위해 3년 동안 규모별로 순차적으로 주52시간 근무제를 적용해 왔다”며 “현장의견을 듣고 제도도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그동안 탄력·선택근로제 확대 등 유연근로제를 확대 개편했고, 사정이 있는 경우 근로자 동의와 고용부 장관 인가를 받아 주 12시간 이상의 추가 근무를 할 수 있는 특별연장근로도 도입했다. 고용부는 주52시간제의 50인 미만 기업 적용을 앞두고 지역신용보증재단의 특례보증 프로그램도 신설했다.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정책자금과 기술보증기금 우대보증 사업도 연말까지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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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기섭 고용부 노동정책실장은 “장시간 근로환경 개선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며 “주52시간제가 조속히 현장에 안착해 기업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국민의 삶의 질은 한 단계 올라가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그러면서 5∼49인 사업장 10곳 중 9곳 이상(93%)이 ‘주52시간제 준수 가능‘이라고 응답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내놨지만 실제 5인 이상 사업장을 둔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인 사이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소리란 불만이 많다.
전문가들은 업종별 특성 등을 따지지 않은 채 획일적인 주52시간제 도입은 산업경쟁력을 약화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지만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해외 제약사들이 근로시간 제한에 걸렸다면 코로나19 백신 개발도 늦어졌을 것”이라며 “작은 벤처기업이나 자영업자, 대형 건설사 등 산업별 특색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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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확대한 유연근로제의 실효성도 의문이라는 평가다. 김강식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탄력·선택근로제는 대형 제조업체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영세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는 실효성이 없어 보인다”며 “근로조건이나 임금 등의 문제로 (50인 미만 업체들은) 신규인력을 구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세 사업장들은 최저임금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주52시간제 시행에 따른 타격도 클 것이라고 우려한다. 노동계는 올해 8720원(시급)인 최저임금을 내년에는 1만원 이상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동결을 요구한다. 류기정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2018년과 2019년의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충격이 전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임금 지급 주체인 소상공인과 중소 영세기업의 수용 여력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전북대 최남석 교수에게 의뢰해 작성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시나리오별 고용 규모’ 보고서에 의하면 최저임금이 현행 8720원에서 1만원으로 인상될 경우 최소 12만5000개에서 최대 30만4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분석됐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구직자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4.3%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시간 단축이나 취업난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주52시간제와 관련해)중앙정부에서 단일화된 지침을 내릴 것이 아니라 업계의 목소리를 좀 들어봐야 했다”며 “생산성에 따라 기업의 근무시간을 65시간에서 60시간으로, 그리고 다시 52시간으로 점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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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 “코로나로 여력 없어… 계도기간 부여해야”
중소기업계는 정부의 주 52시간 근로제 강행 발표에 강한 유감의 뜻을 표명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당장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만큼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2개 중소기업 관련 단체는 16일 공동 논평을 통해 “중소기업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응하기 급급해 주 52시간제 도입을 위한 근무체계 개편 등의 준비를 할 여력이 없었다”며 “최소한 코로나19 상황이 정상화될 때까지만이라도 계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앞서 대기업에는 9개월, 50인 이상 기업에 1년의 계도기간이 부여된 것을 감안해 50인 미만 기업에도 그 이상의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들 단체는 “코로나19로 작년부터 외국인 근로자가 입국하지 못하고 있어 영세기업들은 인력난으로 사업의 운영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50인 미만 업체들은 도저히 주 52시간제를 지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호소했다.
중소기업의 비중이 큰 주조, 금형 등 뿌리산업의 경우에는 업무 특성상 24시간 내내 기계를 돌려야 한다.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려면, 추가 인원이 불가피한데 코로나19 여파로 추가 인력을 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설명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제조업 분야의 외국인 근로자 입국 예정 인원은 3만7700명이었지만 이 중 6.4%(2437명)만 국내에 들어왔다.
중기 관련 단체들은 특별연장근로 인가 기간과 대상 등의 확대도 촉구했다. “현재 주 단위로 돼 있는 초과근로 한도를 노사 자율에 기반해 월 단위, 연 단위로 개선해달라”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5~29인 기업에 대해서만 내년 말까지 일주일에 8시간의 추가 연장 근로가 가능하다.
이날 논평에는 중기중앙회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소상공인연합회, 한국여성벤처협회,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 코스닥협회 등이 참여했다.
정필재·안병수·박세준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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