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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칼럼] 결혼식에 49명만 초대하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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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08-29 23:37:17 수정 : 2021-08-29 23: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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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하객 수까지 통제
결혼 앞둔 신랑·신부들 울상
북적대는 결혼식 감행 만무
규제보다 자율성 맡길 수 없나

얼마 전, 대학 동기들 카톡방에 올라온 사연이다. “사촌 동생네가 딸 결혼식 날짜를 잡았었는데, 신랑 부모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돼 2주간 자가격리 들어가는 바람에 결혼식도 연기하는 영화 같은 일이 발생했다”는 웃픈 스토리였다.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던 예전 주말 드라마 속 대사가 실감 나는 요즘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수도권 4단계, 비수도권 3단계 유지가 9월 5일까지 연장된다는 발표 속에, 지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저런 사적 모임 규제와 더불어 결혼식 하객은 49명까지만 허용된다는 소식에 여기저기서 볼멘소리가 들려온다. ‘51명은 불허하고 49명까지만 허용하는 근거가 무엇이냐’ ‘49명만 초대하라니 누굴 부르고 누굴 부르지 않는단 말이냐’ ‘아무리 코로나 비상상황이라지만 국가가 결혼식 하객 규모까지 통제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냐’ 등 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코로나 팬데믹이 우리네 삶의 많은 부분을 바꿔 놓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변화가 시작된 상황에서 코로나가 방아쇠 당기는 역할(trigger)을 한 것 또한 사실이다. 작은 결혼식만 해도 코로나 이전부터 많은 이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던 분위기 아니었던가.

‘우리 작은 결혼식 해요’라고 할 땐 다음 두 가지 의미 중 하나거나 두 가지 모두에 해당한다고 한다. 곧 결혼식에 초대하는 하객 규모가 작다는 의미가 하나요, 결혼식 주도권(?)이 부모 대신 예비부부에게 있다는 의미가 다른 하나란다. 실상 부모 도움 없이 당사자만의 힘으로 결혼 비용을 충당하기는 어려울 테지만. 결혼식 진행과정에서 부모 입김보다 당사자 목소리가 클 때 작은 결혼식이라 부른다는 이야기였다.

결혼 의례의 변화 속엔 결혼을 둘러싼 사회적 의미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작은 결혼식을 선호하게 된 배경으론 무엇보다 친족관계망의 범위가 축소되고 왕래 빈도 또한 감소된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70년대 중반, 당시로선 희소했던 국제결혼을 선택했던 선배는 중국계 미국인 남편으로부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토록 많은 사람이 내 결혼식에 와 주다니 신기하다’는 이야길 들었다 했다.

이처럼 부모님 하객이 주를 이루던 부모 중심의 혼례로부터 신랑신부 중심의 예식으로 옮겨가기 시작했음 또한 작은 결혼식 확산에 한몫한 요인인 것 같다. 결혼식 주례가 사라지고 폐백은 생략하는 분위기라든가, 신랑신부가 함께 입장하고 함께 즐기는 이벤트가 늘어가는 분위기는 결혼식의 무게 중심이 부모로부터 예비부부로 이행해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셈이다. 이혼율 증가도 굳이 결혼식 규모를 키우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했으리라.

십시일반(十匙一飯·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밥을 보태면 한 사람이 먹을 만한 양식이 됨) 풍습을 담은 결혼식 축의금 전달 방식도 이미 변화 중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청첩장 하단에 작은 글씨로 조심스럽게 계좌번호를 보내기 시작하더니, 요즘은 코로나 상황을 명분으로 솔직하고 당당하게(?) ‘마음 보내주실 분을 위해 계좌번호를 함께 보낸다’는 메시지가 온라인을 타고 날아온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증가일로에 있는 상황에서 강력한 거리두기가 최선의 방책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럼에도 결혼식 하객은 49명까지만 허용된다는 지침을 보니, 오래전 결국은 실패로 끝나고 만 가정의례준칙이 오버랩된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시민이라면 지금처럼 엄중한 상황에서 하객이 북적대는 결혼식을 감행하기 만무하거니와, 하객 입장에서도 꼭 가야 할 자리와 굳이 가지 않아도 좋을 자리 정도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성숙한 시민적 자율성 및 책임감을 강조하기보다, ‘감 놓아라 대추 놓아라’ 식의 규제와 통제에 의존한 채 국민을 길들이려는 건 아닌지 하여, ‘결혼식 하객은 49명까지만’ 앞에서 못내 마음이 불편해온다. 최근 동네 입구 사거리 목 좋은 자리를 지키던 음식점마저 버티지 못하고 문 닫는 걸 보자니,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한 정서적 피로감에 더해 무력감이 밀려온다. 도대체 어느 누가 코로나 확진자로 판명되길 원한단 말인가.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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