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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집 키울수록 온갖 규제로 옥죄… 기업들 ‘성장판’ 닫는다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입력 : 2021-10-20 06:00:00 수정 : 2021-10-20 07:2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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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지옥’에 사라진 성공신화

주52시간제 등 일률적 정책 집행에
中企·스타트업 기술개발 열기 ‘실종’
가업승계에 ‘富의 대물림’ 반감 크고
상속 까다로워 장수기업 배출 요원

중견기업 오르자 각종 규제 휩싸여
‘중소기업으로 회귀 검토’ 매년 증가
양질의 대규모 고용 창출 어려워져
전문가 “대기업·장수기업 육성 필요”

글로벌 일류기업으로 성장한 삼성그룹의 첫발은 대구의 한 구멍가게였다. 시골 청년이 인수한 조그만 쌀가게는 지금의 현대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으로 성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국내 기업의 성공 신화가 창업자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며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초석이 됐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매출액·고용인원 등 획일적 잣대로 기업을 줄 세우는 정부 정책과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각종 규제가 발목을 잡으면서 예전과 같은 성공 신화는 눈에 띄게 줄었다. 기업 생태계의 무너진 성장 사다리가 한국 경제 전체의 역동성과 성장동력까지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규제 지옥에 갇혀 꿈을 꿀 수 없는 기업들

“주 52시간 근무제는 연구·개발을 핵심으로 하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립니다. 정작 기업과 종사자들에게 와닿지 않는 정책이라면 개선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서울 구로디지털산업단지의 한 스타트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지난 7월 주 52시간제가 5∼49인 사업장까지 전면 확대시행되면서 그의 회사 분위기도 달라졌다. 밤낮 없이 기술 개발에 열을 올리던 직원들의 열기가 사라진 것도 그때부터다. 그는 “일률적인 정책 집행이 가져온 폐해”라고 했다.

19일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5∼299인 중소기업 414곳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1%가 여전히 주 52시간제 시행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 52시간제 시행이 어려운 이유로는 구인난(52.2%)을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고, 사전 주문 예측이 어려워 유연근무제 활용이 어려움(51.3%), 추가 채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50.9%) 등이 뒤를 이었다. 결국 구인난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인건비 부담으로 수익성이 떨어지는 상황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밖에 없다. 애초에 중소기업이 몸집을 불리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기업 지배구조 변화를 옭아매는 국내 기업 환경도 중소기업의 성장 사다리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나라 최고 상속세율(50%)은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국가 중 일본에 이은 2위다. 상속세 실효세율도 평균 34%로 높은 편인 데다 가업상속 공제도 까다롭다. 경영 승계 후 사후관리 기간을 보면 국내의 경우 상속 후 최소 7년을 경영해야 공제요건이 갖춰지지만, 영국은 2년, 독일은 5년으로 제한하고 있다. 지분보유 최소 의무기간 역시 국내는 7년이지만 독일은 5년으로 종료된다. 가업승계지원제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탓에 대를 이어 경영하는 장수기업이 탄생하기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중소벤처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국내 중소기업 경영자의 평균 연령은 53.9세로 집계됐다. 60세 이상인 기업 비중도 26.2%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문제는 국내 산업기반과 국가경쟁력 확보가 걸린 문제”라며 “부의 대물림이라는 사회적 반감이 큰 상황에서 상속세제 개선을 단기에 실행하기는 곤란하지만, 시급성이 요구되는 부분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업승계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담을 줄여주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과 중장기적으로 상속세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규제 피하려 피터팬 머무는 기업들

중소벤처기업부의 중소기업 기본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기업의 99.9%가 중소기업에 해당한다. 전체 기업 종사자의 83.1%가 중소기업에서 근무한다. 중소기업에서 한 단계 성장한 중견기업의 비중은 0.7%에 불과하다. 각각의 중견기업 규모는 미미할 수 있지만, 전체 기업 비중으로 치면 총 고용 13.8%, 총 매출액 15.7%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산업의 ‘허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99.9%의 중소기업에서 0.7%의 중견기업으로 바늘구멍을 통과하더라도 어렵사리 얻은 지위를 포기하는 경우가 잦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공동실시한 중견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정부 정책 수혜를 위해 중소기업으로 회귀를 검토한 기업은 전체 응답의 5.1%로 나타났다. 앞선 2017년(4.9%), 2018년(5%)보다 소폭 늘어난 수치다.

중소기업 회귀 검토 이유로는 ‘조세 혜택’이 54.3%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금융지원(21.3%), 판로 규제(19.4%) 등이 뒤를 이었다. 중견기업이라는 이름표를 다는 순간 공공 조달시장이 진입문은 좁아지고 각종 제도와 법령에 따른 규제가 따라 붙는다는 게 업계의 불만이다. 결국 중견기업 스스로 성장을 거부하고, 기술혁신과 경영 투자에 소극적으로 돌아서는 계기가 됐다.

“연구개발(R&D) 정부 지원 사업을 한 적 있느냐”는 물음에는 중견기업의 12.8%만 ‘수행했다’고 답했다. 1년 전 13.4%보다 감소한 수치다. 새로 해외 시장을 개척해 판로를 넓히려는 의지도 줄어들고 있다. 2017년 15.8%였던 중견기업의 해외 진출 의향은 2018년 15.4%, 2019년 14.1% 등으로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중견기업이 성장을 멈추면서 양질의 대규모 고용 창출을 책임져야 할 대기업이 탄생하기에는 더욱 어려운 구조가 됐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포춘 글로벌 500대 기업 명단을 분석한 결과 국내 대기업 숫자가 주요 선진국에 비해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대기업은 62개, 독일은 44개, 일본은 39개인 데 반해 한국은 9개에 불과했다. 대기업의 숫자가 중요한 것은 대기업이 신규 채용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한경연의 설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세를 이어간 지난해에도 국내 대기업은 전년 대비 2%가량 일자리를 늘리는 등 고용 창출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공정거래법·금융지주회사법·상법 등 기업이 성장할수록 규제가 늘어나는 시스템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청년 실업을 해결하려면 안정적인 근로 환경을 제공하는 대기업과 장수기업을 정책적으로 육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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