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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또래의 상당수는 만화로 한글을 익혔다. 어릴 때 용돈으로 동전 몇 닢을 받으면 만화가게로 달려가곤 했다. 만화책을 고르는 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고 보는 데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화가게 주인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꼼꼼히 따져 책을 사고 오랜 시간 음미하면서 읽는 버릇은 그때부터 몸에 익은 게 아닌가 싶다. 당시에 본 만화책 대부분이 명랑만화다.

196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명랑만화는 1970∼80년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동네마다 번성하던 만화가게와 지면의 상당 부분을 만화로 채우던 어린이 잡지가 명랑만화 흥행에 한몫했다. 아이들이 문화 소비의 주체로 떠오른 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력의 표현을 제지하던 당시 사전심의(검열)제도도 명랑만화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한다. 쇼윈도 상품처럼 깔끔하고 흠이 없는 만화, 이른바 ‘건전문화’ 콘텐츠만 출판이 허용되던 시절이다. 고 길창덕 화백의 ‘0점 동자’는 제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연재가 조기 종료되기도 했다.

명랑만화는 우스꽝스럽고도 친근한 캐릭터가 주택가 골목이나 학교 등에서 벌이는 일상의 해프닝을 담아 웃음을 주는 에피소드 만화다. 만화평론가 박석환은 저서 ‘만화 리뷰 쓰기’에서 화풍으로 보면 명랑만화체는 대상을 단순화한다고 했다. 명랑만화 이후의 주류 만화인 극화의 극사실체와 대비된다.

‘명랑만화의 대부’라 불리는 길 화백의 ‘꺼벙이’가 대표적인 작품이다. 머리에 큼지막한 땜통을 단 꺼벙이는 한국 만화 역사상 대중들에게 가장 친숙한 캐릭터다. 길 화백의 만화에는 당시 우리의 일상생활이 녹아 있어 지금 보아도 정겹다.

지난달 한국만화가협회 주최 ‘제21회 만화의 날’ 기념식에서 길창덕, ‘도깨비 감투’ ‘로봇 찌빠’의 신문수, ‘맹꽁이 서당’의 윤승운, ‘심술통’의 이정문, ‘번데기 야구단’의 박수동 화백이 공로상을 공동 수상했다. ‘명랑만화 5인방’으로 꼽히는 거장들이다. 낚시모임으로 친분을 다졌다고 한다. 2010년 길 화백이 작고한 데 이어 신 화백이 지난달 30일 별세했다. 어린 시절 영웅들의 타계는 아련한 추억의 한켠이 사라지는 듯한 상실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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