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중 제2도시 민간지역 포격…'진공폭탄' 사용설도
러, 제재 맞서 핵위협 카드…서방, 암호화폐 등 추가제재 예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닷새만에 양측간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지만 교전은 계속됐다.
우크라이나 제2 도시에서는 민간 지역을 대상으로 한 포격으로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오는 등 러시아의 공격 수위는 오히려 높아지는 양상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을 향해 '핵 위협' 카드까지 꺼내든 상황에서 미국과 유럽은 광범위한 경제제재를 계속 부과했다.
◇ 러·우크라 첫 대면…"며칠 내에 2차 회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북부 국경에 가까운 벨라루스 고멜 주(州)에서 처음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약 5시간 동안 진행된 첫 번째 회담은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그러나 양측은 일부 합의가 가능한 의제를 확인하고 다음 회담에서 이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러시아 대표단 단장은 "우리는 모든 의제에 대해 상세히 논의했다"며 "합의를 기대할 만한 일부 지점들을 찾았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회담 후 비디오 연설을 통해 "협상단이 키예프로 돌아오면 우리가 들은 것을 분석할 것"이라며 "그리고 난 다음 두 번째 협상을 어떻게 진행할지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러면서도 "지금까지 우리가 얻고자 하는 결과물을 얻지는 못했다"면서도 "일부 시그널은 얻었다"고 설명했다.
다음 회담은 며칠 내로 폴란드-벨라루스 국경에서 열기로 하면서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 수위 높이는 러…민간지역 포격·'진공폭탄' 사용 주장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간 회담이 열리는 가운데 다른 쪽에서는 우크라이나 곳곳에서 양측간 교전이 더 치열해졌다.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애초 예상보다 진격이 더딘 러시아가 공격 수위를 높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리코프에서는 민간지역에 대한 포격으로 수십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NBC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러시아군은 그동안 군사시설 외에 민간지역은 공격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는데 이제 민간지역까지 '무차별 포격'을 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부근에서는 수십㎞에 달하는 러시아군 수송 행렬이 포착됐다. CNN 등 외신은 미국 상업위성 업체 맥사(Maxar)가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 분석을 토대로 키예프 도심에서 약 27㎞ 떨어진 안토노프 공항에서부터 북쪽으로 64km 넘게 러시아군 수송 행렬이 늘어서 있으며 갈수록 길어진다고 전했다.
러시아가 대량살상무기를 사용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이날 미국 의회 보고를 마친 뒤 "러시아군이 제네바 협약에 의해 금지된 진공폭탄을 사용했다"며 "러시아가 거대한 가해를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진공폭탄은 산소를 빨아들여 강력한 초고온 폭발을 일으킴으로써 주변에 있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무기다.
◇ 러, 제재 맞서 '핵위협 카드'…벨라루스에 핵배치 우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방의 '가혹한 제제' 등에 대한 맞대응으로 '핵 위협' 카드를 꺼내 들면서 긴장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이날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핵전력 강화 준비태세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보도문을 통해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전략미사일군과 북해함대, 태평양함대 등의 당직팀과 장거리비행단(전략폭격기 비행단) 지휘부가 강화 전투 준비태세로 돌입했다"고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전했다.
3대 핵전력으로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 폭격기를 운용하는 부대 모두가 함께 비상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은 벨라루스가 러시아 핵무기에 장소를 제공하기 시작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AFP 통신에 따르면 벨라루스는 지난 27일 대통령 연임 제한 조항 개정과 비핵화 정책 철회, 러시아 병력의 영구적 주둔 허용에 관한 내용을 담은 개헌안을 투표했다.
EU는 "우리는 벨라루스에 핵무기를 가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면서 "그것은 러시아가 핵무기들을 벨라루스에 둘 것이라는 의미이고 이는 매우 위험한 길"이라고 우려했다.
◇ 서방, 핵 위협 대책 논의…추가 제재 예고
미국 등 서방은 핵전쟁 가능성에 대해 단호하게 부정하며 사태가 핵위기로 비화하지 않도록 긴장 수위를 조절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미국인들이 핵전쟁에 대해 우려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고 말했고, 영국 정부도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핵 태세에는 큰 변동이 없다고 강조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도 브리핑에서 "(미국의) 핵 경보 수준을 변경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며 "핵전쟁은 일어날 수 없으며, 전 세계 모두가 이 같은 위협을 줄이기 위해 조처를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서방은 푸틴 대통령이 꺼내든 '핵 위협' 카드가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주의를 돌리고 러시아의 핵 억지력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한 발언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낮 80여 분간 동맹 및 파트너 국가 정상들과 다자 전화회의를 갖고 러시아의 핵 위협 등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고 푸틴 대통령을 직접 제재 리스트에 올린 서방은 추가 제재도 예고했다.
영국 정부는 러시아 암호자산 압수 권한을 담은 법안을 만들겠다고 밝히는 등 러시아 선박 입항 금지와 세컨더리 제재 등 대러 제재를 계속 내놓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해 지지를 유지하며, 러시아가 긴장 완화 조처를 하지 않을 경우 가혹한 대가를 부과할 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재확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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