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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 전성기부터 해체까지…‘비운의 사업가’ 김석원 전 회장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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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08-26 14:15:59 수정 : 2023-08-26 14: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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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그룹을 한때 재계 6위 규모까지 키웠으나 자동차 사업 투자 실패로 그룹이 해체되는 등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별세했다. 향년 78세. 

 

성곡언론문화재단은 이날 “김 전 회장이 새벽 3시쯤 노환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이 26일 새벽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1945년 대구에서 태어난 김 전 회장은 부친인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로부터 그룹을 물려받아, 재계 6위까지 성장시키며 쌍용그룹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사진은 이날 빈소가 마련된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뉴스1

1945년 대구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 졸업 후 미국 브랜다이스대 경제학과에서 유학하다 부친인 성곡 김성곤 쌍용그룹 창업주가 세상을 떠나면서 1975년 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30세의 나이에 그룹을 이끌게 된 김 전 회장은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소규모 비누공장인 삼공유지합자회사를 모태로 출발, 방직업과 시멘트업을 해오던 쌍용그룹은 정유, 중화학, 금융업 등으로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1976년 쌍용중공업과 쌍용정유, 1977년 쌍용건설, 1978년 쌍용엔지니어링을 설립하고, 1984년 쌍용투자증권, 1985년 쌍용경제연구소, 1988년 쌍용투자자문 등을 세워 각 분야로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재계 6위 규모의 재벌로 성장했다. 

 

고인은 특히 자동차에 큰 애정을 가졌다. 1986년 동아자동차를 인수해 쌍용자동차가 탄생했다. 1988년 4륜구동 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코란도 패밀리를 출시하며 ‘지프형 자동차’ 시장을 키웠다. 벤츠와 엔진 기술 제휴로 4륜구동 중형 SUV 무쏘, 소형 승합차 이스타나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코란도와 무쏘의 아버지’로 불린  김 전 회장은 쌍용그룹 회장 재임 시절에도 세단이 아닌 지프형 자동차 코란도를 이용했다고 한다. 

지난 1993년 11월1일 전경련 회관에서 열린 정례 회장단 회의에 앞서 담소하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연합뉴스

성장을 거듭하던 쌍용그룹은 그러나 자동차 산업에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 동아자동차 인수 당시 시세보다 높은 가격을 제시해 경영권을 확보하면서 1조원 가까운 부채를 안게 됐다. 현대정공이 갤로퍼라는 강력한 차종을 앞세워 1992년부터 SUV 시장의 새로운 선두주자로 올라서면서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대규모 투자와 기술 확보 노력에도 쌍용차 경영 상황은 계속 악화해 부채는 3조4000억원, 누적 적자는 4000억원 규모에 달하며 쌍용그룹 전체가 휘청이게 됐다. 결국 쌍용자동차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발생 직후인 1998년 대우자동차로 매각이 결정됐다.

 

쌍용자동차와 쌍용그룹이 흔들리던 당시 김 전 회장은 정계 진출해 있었다. 김 전 회장은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회장은 동생인 김석준이 맡았다. 김 전 회장은 그룹이 경영 위기에 빠지자 1998년 국회의원직을 사퇴하고 회장에 복귀했으나 그룹 해체를 지켜봐야 했다. 

 

쌍용그룹은 1998년 채권단에 의해 구조조정에 들어갔고, 고인의 경영권도 박탈됐다. 1998년 쌍용투자증권은 미국 H&Q AP에, 1999년 쌍용정유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사 펀드에 매각됐다. 2000년에는 쌍용중공업을 한누리투자증권 컨소시엄에, 2002년 쌍용화재를 중앙제지에, 2003년 용평리조트를 세계일보에 매각했다. 

지난 1995년 4월 21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정치활동에 전념하기 위해 쌍용회장직을 사임하겠다고 밝히는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연합뉴스

김 전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각종 법정 소송에 휘말렸다. 쌍용양회 소유의 강원도 평창군 토지 2곳 등을 헐값에 매수하는 방법으로 계열사에 310억여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2004년 구속기소 돼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2011년에는 계열사에 쌍용양회 자금 900억원을 부당 지원하고, 회삿돈 7억3000여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일부 인정돼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200시간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신정아 사건’에 연루돼 홍역을 치렀다. 검찰이 신정아씨와 김 전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 성곡미술관장의 업무상 횡령 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김 전 회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중 수표와 현금 60여억원과 차명 통장이 발견돼 모두 국고로 환수됐다.

 

경영자로서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겪었으나 김 전 회장이 청소년, 언론, 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는 이견이 없다. 

 

고인은 스키 불모지였던 국내에 용평스키장을 만들어 동계스포츠와 레저산업의 발전에 초석을 마련했다. 이는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 토대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985년 7월24일 제30차 보이스카우트 세계 총회에 참석한 뒤 귀국한 고인이 김포공항에서 보이스카우트 대원들의 장문례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1982년 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에 선출됐고, 1991년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의 성공적 개최에 일조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직후 개최된 세계청소년캠프 본부장을 맡아 청소년 국제교류에도 기여했으며, 2000년부터 3년간 세계스카우트지원재단 의장직을 맡기도 했다.

 

부친이 세운 국내 최초 언론문화재단인 성곡언론문화재단과 국민대학교를 운영하는 국민재단에 대한 지원도 계속했다.

고인은 이외에도 한미경제협의회 부의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등 다방면에서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다. 

 

유가족에는 부인 박문순씨, 아들 김지용(학교법인 국민학원 이사장)·김지명(JJ푸드 시스템 대표)·김지태(태아산업㈜ 부사장)씨가 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치른다.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특1호실. 발인은 29일 오전 7시 20분. 장지는 강원도 용평 선영이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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