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 한탄강 주상절리 코앞에서 즐기는 물윗길/매년 10∼3월 한탄강에 부교 띄워/눈과 얼음이 어우러지는 한겨울이 가장 인기/‘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폭포·부채꼴 주상절리 송대소 ‘감탄’
길. 우리 앞에 놓인 많은 길은 때론 찬란하지만 어떨 때는 외롭고 힘겹다. 그런 길들이 마치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얽히고설켜 우리 인생의 시간을 만들어 간다. 올해 내 앞에는 어떤 길들이 놓일까. 좋은 길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행복한 길은 더욱 밝아지고 고난의 길은 다소 평탄해지길 소망하며 겨울 풍경 가득한 철원 물윗길을 걷는다.
◆겨울에 더 아름다운 물윗길
올해는 열심히 걷고 뛰면서 건강한 몸을 한번 만들어 봐야지. 새해가 되면 많은 이들이 뱃살을 줄여 보겠다고 굳은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귓불을 에는 매서운 바람과 순식간에 손발을 꽁꽁 얼려 버리는 동장군이 떡 버티고 있어 주말이라도 현관문 열고 나서기 쉽지 않다. 그러니 덜덜 떨어야 하는 겨울 여행을 가자면 손사래부터 칠 것이다.
여행하기 쉽지 않은 계절이지만 매년 이맘때를 놓치지 않고 많은 여행자가 몰리는 곳이 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쳐야만 특별한 풍광을 빚어내는 겨울왕국 강원 철원군 한탄강 물윗길이다. 태봉대교 주차장에 도착하자 평일인데도 여행자들로 북적대 활기가 넘친다. 입장권은 성인 1만원원인데 철원사랑상품권 5000원을 내준다. 물윗길을 도보 여행한 뒤 태봉대교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택시나 철원의 식당에서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한탄강 물윗길은 2020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된 한탄강의 주상절리를 물 위에 설치된 부교를 걸으며 코앞에서 감상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 매년 10월 개장해 다음 해 3월까지 운영되기에 가을·겨울·봄 풍경을 모두 즐길 수 있지만 절정은 12∼1월이다. 하얀 눈이 덮인 꽁꽁 얼어붙은 한탄강과 빙벽이 겨울왕국 같은 동화 속 세상을 만들기 때문이다.
트레킹 코스는 만만치 않다. 직탕폭포∼태봉대교∼송대소∼은하수교∼마당바위∼내대양수장∼승일교∼고석정∼합수지∼순담대교까지 8.5㎞(부교 3.3㎞·강변길 5.2㎞)에 달해 빨리 걸어도 편도 3시간은 걸린다. 특히 부교는 딱딱한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발이 쉽게 피로해지고 얼음이 얼지 않은 구간에선 부교가 출렁거려 빨기 걷기 쉽지 않다. 따라서 무리해서 전 구간을 걷기보다는 체력에 맞게 일부 구간만 걷고 택시를 이용해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추천한다. 주말과 공휴일에는 태봉대교∼은하수교∼고속정을 거쳐 한탄강 주상절리길 순담매표소∼종합운동장∼드르니매표소까지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운영돼 좀 더 편하게 물윗길을 여행할 수 있다.
◆가슴 시원하게 열어주는 직탕폭포
가장 인기 있는 구간은 직탕폭포∼은하수교 1.5㎞ 구간이다.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이면 충분하고 물윗길의 주요 포토존들이 몰려 있다. 태봉대교 아래 가파른 내리막길로 들어서면 여행이 시작된다. 오른쪽 직탕폭포를 향해 걷는다. 숱은 좀 줄고 색도 바랬지만 오솔길 따라 펼쳐진 갈대가 겨울 낭만을 선사한다. 강변길이 끝나면 부교로 이어지며 10분을 걸어가자 장쾌한 물소리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한국의 나이아가라’ 직탕폭포다. 수직으로 형성된 우리나라 보통 폭포와는 달리 한탄강을 가로지르며 높이 3m, 너비 80m로 펼쳐져 이런 별명이 붙었다. 직탕폭포 일부는 꽁꽁 얼어붙었고 하얀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그 사이를 뚫고 쏟아져 내리는 장쾌한 물줄기를 바라보니 새해의 희망찬 기운이 가슴 한가득 담기는 기분이다. 역시 한겨울에 오기를 잘했다.
수량이 많은 여름에도 장관이지만 이처럼 눈과 얼음이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폭포 풍경은 잊을 수 없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부교에 포토존이 설치돼 폭포를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왼쪽 절벽을 따라가면 코앞에서 겨울 직탕폭포를 만끽할 수 있다. 연인과 가족들은 한 해 소망을 가득 담아 다정한 포즈로 추억을 남긴다. 폭포 앞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소원이 담긴 많은 돌탑이 세워졌다. 작은 돌멩이 그 위에 살포시 얹으며 작지만 소중한 소원 하나 빌어 본다.
직탕폭포는 화산활동의 결과물이다. 철원에서 북동쪽으로 16.6㎞ 떨어진 북한의 오리산에서 10만∼60만년 전 화산 폭발이 계속 일어났고 분출한 용암이 철원평야와 골짜기를 메워 넓고 편평한 용암지대가 만들어졌다. 현무암은 오랜 시간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주상절리를 따라 떨어져 나가면서 이런 계단 모양의 독특한 직탕폭포가 탄생했다. 직탕폭포 위쪽 현무암 돌다리도 꼭 걸어 보도록. 12만∼54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현무암 돌다리 위에 서면 누구든지 화보로 만들어 버린다.
◆자연이 빚은 신비한 주상절리
직탕폭포를 뒤로하고 길을 되돌아 태봉대교를 지나면 본격적인 물윗길 부교 여행이 시작된다. 20여분을 걸으면 자연이 빚은 위대한 걸작, 송대소 주상절리가 등장한다. 이럴 수가. 굽이굽이 휘어진 물길을 따라 높이 30∼40m 절벽에 기기묘묘하게 아로새겨진 주상절리는 보는 순간 감탄이 쏟아진다. 수직과 수평으로, 또는 옆으로 기울어진 부채꼴까지 매우 다양하다.
7∼8개 지층의 나이테를 따라 형성된 주상절리는 붉은색, 회색, 검은색 등 다양한 색깔이라 마치 물감을 짜 놓은 팔레트를 펼쳐 놓은 듯하다. 여기에 힘차게 날아오르는 두루미의 형상으로 디자인한 아찔한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까지 어우러지는 풍경은 화보가 따로 없다.
송대소는 변성암과 현무암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철원평야를 흐르던 현무암질 용암이 단단한 변성암으로 이뤄진 한탄강의 좁은 통로를 채운 뒤 급격하게 식으면서 5∼6각형의 모양의 주상절리가 만들어졌다. 송대소는 물줄기가 심하게 꺾이는 곳이라 현무암이 침식되면서 통로 안쪽 일부만 남아 지금처럼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주상절리 절벽이 탄생했다. 전설이 하나 깃들어 있다. 옛날 송도 사람 삼 형제 중 두 명은 이곳에서 이무기에 물려 죽고, 나머지 한 사람이 그 이무기를 잡아 ‘송도포’로 불렸는데 나중에 송대소로 이름이 굳어졌단다. 실제 이곳은 명주실 한 타래가 다 풀려 갈 정도 깊어 수심이 30m에 달한다.
송대소를 돌아 나가면 2020년 말 개통한 철원 한탄강 은하수교가 머리 위로 더욱 아찔하게 펼쳐진다. 물윗길 양쪽 절벽 위를 따라 걷는 한여울길 1코스의 동송읍 장흥리와 2코스의 갈말읍 상사리를 연결하는 연장 180m 현수교다. 왼쪽 너럭바위 위로 은하수교로 올라가는 오솔길이 보인다. 다소 가파른 길을 헉헉대고 올라 은하수교 위에 섰다. 방금 지나온 물윗길 부교가 굽이치는 한탄강 송대소 사이로 놓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다시 태봉대교로 돌아갈지 아니면 끝까지 완주할지 결정해야 하는데 태봉대교로 돌아간다면 절벽 위를 따라가는 한여울길을 추천한다. 송대소 전망대에 오르면 깎아지른 수직절벽 주상절리가 장대하게 펼쳐진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다시 은하수교 아래 물윗길로 내려가 너럭바위를 지나 승일교까지 걸으면 얼음 왕국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수직절벽을 채운 거대한 빙벽 덕분이다. 사실 자연 빙벽은 아니고 오는 13∼21일 열리는 철원 한탄강 얼음 트레킹 축제를 위해 만든 인공 빙벽이다. 하지만 얼어붙은 한탄강과 눈이 수북하게 쌓인 주변 풍경과 한 몸인 듯 어우러져 자연 빙벽이라 해도 깜빡 속아 넘어가겠다. 올해 12회를 맞은 얼음 트레킹 축제는 물윗길을 걸으며 주상절리를 즐기는 행사. 승일교 부근에 대형 얼음 조각, 눈 조각, 이글루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되고 버스킹 공연, 연날리기, 눈설매, 개썰매 체험 등이 펼쳐져 추위를 이기며 신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조선 명종 때 의적 임꺽정이 근거지로 활약했다는 얘기가 전해지는 고석정에도 운치가 넘친다. 하얀 눈이 쌓인 바위 꼭대기에 푸른 소나무가 우뚝 서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현무암과 화강암으로 이뤄진 두 암석이 강물에 깎이는 정도가 달라 지금 같은 비대칭의 독특한 고석정이 만들어졌다. 입구 세종강무정에서 오르면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 등장한 고석정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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