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당 “폐지하고 선불형 교통카드로”
“결과적으로 도시에 사는 노인과 시골에 사는 노인을 차별한다.”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를 결국 청장년층이 내는 요금으로 보전하는 것 아니냐.”
이 같은 비판을 받던 ‘65세 이상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을 폐지하겠다는 공약이 정치권에서 나와 눈길을 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 공약이다. 그간 노년층 무임승차 혜택을 두고 계속해서 갈등이 있었던 만큼 어떤 식으로든 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개혁신당은 이 혜택을 폐지하는 대신 65세 이상 노년층에게 연간 12만원 혜택이 주어지는 선불 교통카드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개혁신당 이준석 정강정책위원장은 1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5세 이상 노년층에게 제공되는 지하철 무상 이용 혜택을 폐지하겠다고 말했다.
◆“제도 수명 다해…매우 부적절한 행정”
이 위원장은 “(옛)소련의 고연령층 무임승차 제도를 본떠 만든 이 제도는 이제 수명을 다했다”며 “논쟁적일 수 있지만,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변화”라고 운을 뗐다. 그는 지하철 무임승차 비용이 2022년 기준 연간 8159억원이라는 통계를 언급하며 “이 비용은 현재 대부분 도시철도 운영기관의 부채로 남아 미래세대에 전가되고 있다”며 “국가가 부담해야 하는 복지비용을 지자체에 떠넘기는 매우 부적절한 행정”이라고 비판했다. 국가가 짊어져야할 짐을 서울교통공사가 부당하게 떠안고 있다는 취지다.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의 기원은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 ‘경로우대제 실시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는데, 실시안엔 70대 이상 노년층에게 철도·지하철·시외버스 요금과 공원 입장료 등을 50% 감면해주는 내용이 담겼다. 보건사회부(현 보건복지부) 공무원이 그 무렵 소련에 출장을 갔다 소련의 노인 무임승차 혜택을 알게 된 뒤 이를 본뜬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4년이 지난 1984년 지하철 요금을 100% 감면해주는 것으로 바뀌었고, 이 혜택이 40년째 지속돼 오고 있다.
◆3가지 문제점…적자, 세대 간 갈등, 지역 간 공정성
혜택 도입 당시에는 노년층 비율이 크지 않아 비용부담이 적었기에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노년인구가 급격히 증가해 당장 내년부터 노년인구 1000만명이 예상되는 현 시대엔 무임승차 혜택이 여러 문제를 만들고 있다.
서울교통공사가 겪는 만성 적자가 첫 번째 문제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월별 65세 이상 노년층 무임 승차인원은 평균 약 1900만명(중복 포함)이다. 수도권에 사는 노년층의 지하철 이용이 활발한 셈이다. 이는 적자로 이어진다. 2022년 서울교통공사가 무임승차로 입은 손실금은 3152억원 수준인 것으로 파악됐다.
적자는 곧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이것이 세대 간 갈등을 낳는 건 무임승차 혜택의 또 다른 문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지하철 기본요금을 150원 올렸는데 오는 7월에도 150원을 추가로 인상할 방침이다. 역시 적자가 원인이다. 서울 강서구에서 중구로 출퇴근하는 임모(31)씨는 “최근 지하철 기본요금이 인상된 후 교통비 부담이 늘었는데 추가적으로 요금을 인상한다고 하니 당황스럽다”며 “결국 노인 무임승차로 인한 적자를 젊은 층이 메꾸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무임승차 혜택이 지역 간 공정성을 해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무임승차 혜택이 ‘지하철’로 한정돼 있다 보니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지역에 사는 노년층은 혜택에서 자연스레 제외되는 것이다. 실제 지하철이 없는 지역에 사는 65세 이상 노년층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방이라는 이유로 교통비를 지원받지 못하는 것을 푸념하는 경우가 많다. 이날 이 위원장 역시 도시철도가 운영되는 서울 등 대도시 거주 노년층에만 혜택이 집중돼 지역 간 공정성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제한 공짜’ 대신 선불형 교통카드
개혁신당은 대안으로 선불형 교통카드 지급을 언급했다. 이 위원장은 “65세 이상 노년층이 도시철도와 버스, 택시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연간 12만원 선불형 교통카드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이 선불형 교통카드를 모두 쓰면 현재 청소년에게 적용되는 약 40%의 할인율을 적용한 요금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게 하겠다고 덧붙였다. 예상 소요 비용은 올해 기준 연간 1조2000억원가량이다.
개혁신당이 노년층 무임승차 혜택에 대한 논의의 불을 댕긴 만큼 어떤 식으로 개선될지 관심이 쏠린다. 다만 노년층 무임승차의 경우 무임승차에 따른 사회적 편익이 크다는 분석도 있기 때문에 이를 잘 고려해 정책을 짤 필요가 있다. 2014년 한국교통연구원이 발표한 ‘교통부문 복지정책 효과분석’ 연구보고서를 보면, 노년층 지하철 무임승차 혜택이 노인 건강 증진과 우울증 감소, 교통사고 감소, 복지비용 축소 등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2012년 기준 무임승차 혜택의 가치는 3361억원이다. 최근 서울 탑골공원에서 만난 남모(76)씨 역시 “교통비가 안 드니 편하게 지하철을 타고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다”며 “덕분에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