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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통유리 창 안의 미장원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머리를 손질 중인 미용사의 뒤쪽에 4∼5명이 소파만큼이나 좁아 보이는 공간에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평상시 산행 루트의 반대편 방향으로 하산 길을 선택한 모험(?) 덕분으로 손님들이 대기 중인 또 다른 미장원을 발견한 거였다.

‘또 다른 미장원’이라고 표현한 것은 텅 빈 모습의 다른 곳과는 다르게 늘 손님으로 만원이어서 내게 궁금증을 던져 온 미장원이 있어서였다. 집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평범한 주택가 작은 상가 귀퉁이에 위치한 이 미장원은 늘 사람으로 붐빈다. 인류의 바깥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었던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 이 작은 미장원을 붐비게 하는가? 처음 이 미장원의 존재를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된 궁금증이었다. 그러나 미용 기술 말고도 특별한 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슨 분석이나 수사(?)를 통해 얻은 건 아니고 그곳에 갈 때면 저절로 느껴지는 거였다. 그것은 친절함이 배어 있는 미장원 원장의 말이었다. 정답게 건네는 말이 만원 사태의 중요한 까닭이었다.

‘어서 오세요’하는 인사에는 의례를 넘어서는 반가움과 감사함이, 머리 손질을 시작할 때와 마무리 단계에서는 손님의 의견에 대한 경청과 반영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손님들끼리 건강, 운동, 음식 조리법, 반찬거리, 급한 저녁 차림, 가족 근황, 자녀 학교 얘기, 아픈 곳 자랑과 비교, 병원 품평과 추천, 몸에 좋은 음식과 약 권유 등의 생활 체험형 이야기보따리가 풀어져서는 물물교환 되었다.

특정인이나 불특정 다수에 대한 험담과 같은 속마음을 털어내는 정보도 살짝 있었다. 나라의 정책, 후손들의 미래에 대한 불안,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 저출산, 마음에 들지 않는 정치적·사회적 이슈 같은 거대 담론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텔레비전에 단골로 출연하는 이들처럼 거칠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 가고 있는 ‘친절한 말하기’가 ‘이야기 소통’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친절한 말이 다른 친절한 말을 불러오고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확장되어 심리적 거리감을 줄이고 유대감은 높이는 거였다. 미장원의 따뜻한 ‘이야기 공동체’에서 사람들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타인이 느끼는 감정을 보듬는 공감’(‘타인의 신발을 신어보다’, 미카코, 정수윤 옮김)을 공유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스토리텔러)이다. 친절한 말과 이야기가 있는 곳에 인간은 모여든다. 친절한 말, 친절하게 하는 말이 우리 곁으로 돌아오면 좋겠다.

김정기 한양대 명예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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