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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시대 인간 위한 혁신인가… 디스토피아로 가는 기만인가 [세계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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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3-30 16:00:00 수정 : 2024-03-30 14:5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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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자산 ‘월드코인’ 논란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개발
홍채 정보 제공하면 코인 총 77개 지급
AI시대 소외계층 ‘기본소득’ 제공 개념
전 세계 450만명 가입·코인 상장 화제

“디지털ID 신기술 퍼스트무버” 평가부터
“개도국 가난한 사람들 정보로 DB 구축
개인정보 보호·보안 등에 문제” 비판도
서비스 중단 등 세계 곳곳 제재 움직임

가상자산 전문가 피트 호슨 교수

생체 정보는 바꿀 수 없는 ‘비가역적 정보’
익명성 보장 안돼… 개인정보 유출시 피해

“인공지능(AI) 시대에 홍채 정보만 인증하면 기본소득을 드립니다.”

‘홍채 코인’으로도 알려진 가상자산 ‘월드코인’이 밝힌 취지다.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샘 올트먼이 개발한 월드코인은 주로 사이버상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등 일반적인 가상자산과 달리 ‘기본소득’이란 개념을 갖고 있다. AI 발전으로 일자리를 잃거나 소외될 수 있는 취약계층 등에게 보편적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9일 월드코인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개발된 월드코인의 전 세계 가입자는 450만명에 달한다. 베타 테스트(출시 전 실험) 기간에만 전 세계 200만명이 홍채를 등록해 월드코인 신분증(ID)을 만들었다. 가상자산 통계분석 플랫폼 코인게코에 따르면 전 세계 주요 거래소에 상장된 월드코인 가격은 25일 기준 3.48달러(약 1만1370원)로 시가총액 약 13억3088만달러(약 1조8850억원)를 기록 중이다.

코인을 받는 방법은 간단하다. 은색 구슬처럼 생긴 홍채 인식 기구 ‘오브(Orb)’에 홍채를 등록하고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월드코인 ID를 만들면 코인 10개를 받는다. 약 12만원(25일 기준) 정도의 가치다. 향후 1년간 격주 간격으로 3개씩, 총 77개를 받을 수 있다. 남녀노소, 나이 불문 월드코인이 화제를 모은 이유다.


하지만 세계 곳곳에선 월드코인에 제동을 걸고 있다. 간편한 홍채 스캔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모순되게도 간단한 등록 방식에 ‘개인정보 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지난 6일(현지시간) 월드코인 사업에 대해 최대 3개월간의 중단 조처를 내렸고, 케냐는 사업 중단을 명령했다. 한국에서도 민원 신고가 잇따르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지난 4일 조사에 들어갔다. 미국에선 애초에 서비스가 출시되지 않았고, 중국과 인도에서도 월드코인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퍼스트무버’ 또는 ‘디스토피아’

AI 시대 취약 계층을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등장한 월드코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디지털 시대에 개인의 신원을 완벽히 관리할 수 있는 ‘혁신’이라는 평가부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디스토피아(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란 상반된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8월 블록체인 전문매체인 코인텔레그래프에는 ‘월드코인이 세상을 개선시킬 수 있다면 한 번 기회를 줘보는 건 어떨까?’라는 제목의 사설이 게재됐다. 사설을 쓴 파올로 타스카 영국 UCL블록체인테크놀로지센터장은 “과거 유엔과 함께 디지털 신분(digital identity)에 대해 연구해 온 나는 잘 설계된 시스템이 부패와 싸우고, 사기 행위를 줄이고, 검열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며 “(월드코인과 같이) 만료되지 않고 전 세계에서 접근하고 읽을 수 있는 디지털 ID는 단순히 편리한 것뿐만 아니라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월드코인과 같이 홍채를 이용해 영구적인 디지털 ID를 만드는 기술이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타스카 센터장은 “정부는 아직 (신원관리를 위한 시스템에)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며 “월드코인이 이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포착했고, ‘퍼스트무버(개척자)’가 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했다. 월드코인이 받고 있는 비판과 우려가 아직 세상에서 시도된 적 없는 신기술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지난 2023년 6월 오픈AI 최고경영자이자 월드코인 창업자인 샘 올트먼이 서울 강남구에서 열린 ‘월드코인 서울 밋업(Worldcoin Seoul Meetup)’ 행사에서 월드코인 프로젝트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반면 일각에선 홍채 정보가 잘못 사용될 수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온다. 전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 출신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엑스(X·옛 트위터)에 2021년 월드코인과 관련해 “생체 인식을 어떤 용도로도 사용하지 말라”며 “인체는 티켓 펀치가 아니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일부 사람들의 홍채가 감시용으로 사용되거나 제3자에게 판매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가상자산 이더리움을 만든 비탈릭 부테인은 지난해 7월 블로그에 월드코인이 개인정보 보호, 보안, 접근성 등의 문제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최소 홍채 스캔을 통해 다른 사람이 내가 월드코인 ID가 있는지에 대한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며 “잠재적으로 홍채 스캔을 통해 더 많은 정보가 드러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사용자의 휴대전화가 해킹될 수 있고, 누군가 강제로 홍채를 스캔하게 하고 ‘가짜 사람’을 3D 프린트해 홍채를 수집하게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기만적 영업 활동 논란

“보편적 기본소득을 미끼로 가난한 사람들의 홍채 정보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지난해 정식 출시된 월드코인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이 발간하는 MIT 테크놀로지 리뷰(MIT)의 보도로 출시 초반 어려움을 겪었다. MIT는 2022년 월드코인이 인도네시아, 케냐 등과 같은 개발도상국에서 사람들을 가입시키기 위해 ‘기만적인 방법’을 사용했다고 지적했다. 보도에 따르면 월드코인은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영어로 된 서비스 약관을 제공하거나, 홍채 수집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 없이 에어팟 경품 등으로 이들을 유혹했다.

지난 2023년 8월 스페인의 한 월드코인 ID 발급소에서 한 남성이 홍채 인식 기구 ‘오브(Orb)’에 홍채 정보를 등록하고 있다. 바르셀로나=AP통신

2021년 12월 인도네시아 구눙구루 마을에서 열린 경품행사에 가면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에 어머니를 따라 행사에 참석한 이유스 루스완디는 월드코인 관계자에게 행사가 무엇인지 물었으나 “돈을 나눠주는 것”이라는 설명만 들었다고 전했다. 당시 코로나19로 마을 주민들은 큰 경제적 타격을 입었기에 이메일과 전화번호, 홍채 정보만으로 현금, 경품 등을 나눠주는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월드코인이 방문한 곳은 구눙구루 마을뿐만이 아니었다. 인도네시아 서부 자바 전역의 마을, 대학, 지하철 등을 방문해 홍채 정보를 수집했다. 이 지역 대부분이 가난한 농촌마을이었다. 주민들은 홍채 정보를 제공했고, 월드코인은 대가로 현금, 에어팟 등을 줬다. 지방 정부 공무원에게 돈을 지불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사업에 대한 정보는 제공하지 않았다.

MIT는 월드코인 재단에 기만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수집한 것에 관해 물었으나 재단은 논란이 된 사례들은 “각각의 사건”에 불과하며 “사생활과 익명성에 대한 권리는 기본 권리라고 믿는다”고 답했다. 출시 전부터 지금까지 월드코인에 대한 우려가 계속되는 이유다.

◆가상자산 전문가 피트 호슨 교수 “월드코인 악용시 빈곤층이 대가 치를 것”

 

“언제나 그랬듯 대가를 지불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 될 것이다.”

 

가상자산을 연구한 피트 호슨(사진) 영국 노섬브리아대 교수는 29일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월드코인의 위험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호슨 교수는 AP통신·MIT 테크놀로지 리뷰 등 다수의 외신에 월드코인의 위험성에 대해 지적한 가상자산 전문가다. 지난해 10월에는 ‘그들이 가상자산을 먹게 하라(Let Them Eat Crypto)’는 책을 출간해 가상자산뿐 아니라 블록체인 기술을 악용하는 범죄행위를 지적했다.

 

호슨 교수는 규제 당국이 월드코인에 집중하지 않는 모습이 우려스럽다며 “월드코인은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있다고 말하지만 익명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해 인도네시아에 방문했을 당시를 회상하며 “(월드코인 출시) 초기에 100만명 정도가 실험으로 등록했는데 이들의 동의 여부에 대한 질문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월드코인)는 사진(얼굴·홍채 등)을 삭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참가자들에게 날짜를 알려주지도 않았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 수집 문제는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는 부분이다.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나마 변경할 수 있는 정보와 달리 홍채 등 생체 정보는 바꿀 수 없는 ‘비가역적 정보’이기 때문이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호슨 교수는 수익성 있는 디지털 신분증(ID)을 만들어 기본소득을 제공하겠다는 월드코인의 취지도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호슨 교수는 “디지털 ID 제도는 영국, 미국 등에서 항상 ‘뜨거운 감자’”라며 “스누핑(네트워크상 다른 사람의 정보를 가로채는 행위) 우려로 대중의 거센 반대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영국의 예를 든 그는 “영국에선 디지털 ID가 개인정보 보호 및 인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정부가 이를 폐기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고 짚었다.

 

특히 월드코인이 악용될 시 빈곤층이 가장 위험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호슨 교수는 “월드코인이 운영되고 있는 빈곤 지역 사회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될 시) 빈곤층이 실질적인 위험에 처할 수 있다”며 “항상 그랬듯 (문제로 인한) 대가를 지불하는 건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지적했다. 월드코인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ID를 만들어 개인정보가 유출되거나 판매되는 등 범죄에 악용될 시 취약계층이 입는 피해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민경 기자 m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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