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패키징’ 고부가 핵심 기술
美, 기존엔 대만 등 보내 후공정
공급망 등 국가안보 우려 적잖아
美 “삼성, 국방분야 칩도 맡게될 것”
SK하이닉스 보조금 규모도 주목
삼성전자의 미국 텍사스주 첨단 반도체 공장 설립과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실험실, 최첨단 반도체 패키징 시설을 포함하는 대규모 투자 계획은 반도체를 고리로 한 한·미 경제안보 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삼성전자는 회사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현지 생산을 늘리면서 고객 확보 측면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전망이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은 15일(현지시간) 삼성의 첨단 패키징 시설 설립을 강조했다. 그는 “이것은 단순히 반도체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부지에서 반도체를 포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패키징은 흔히 반도체 산업 서플라이 체인의 종착점이라 불린다. 제조시설 등을 통해 생산된 개별 칩을 분리·조립해 최종 제품화하는 산업이며, 최근 급속 발달한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의 한계 극복과 고부가제품 구현 등을 위한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실제 반도체 미세공정 기술은 2002년 130나노미터(nm·10억 분의 1m)급에서 지난해 3나노급까지 단기간 발전을 이루었다. 업계에서는 약 2년마다 반도체 집적도가 2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이 회자된다. 또 이 속도를 따라잡아 첨단 패키징을 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의 삼성전자와 미국의 인텔·Amkor, 대만의 TSMC·ASE, 중국의 JCET 등 6개사 정도다. 시장조사기관 욜레 인텔리전스는 반도체 첨단 패키징 시장 규모가 2022년 443억달러에서 2028년 786억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가 미국에 없던 첨단 패키징 생태계를 제공한 것은 국방 분야 협력이라는 성과로 돌아온다. 미 상무부는 삼성전자가 향후 미국의 항공우주와 방위, 자동차 등 핵심 산업에 사용되는 칩 생산을 맡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몬도 장관은 이런 계획을 밝히면서 그간 안보 시스템에 사용되는 반도체를 포함, 미국에서 생산되는 반도체조차 패키징을 위해 대만 등으로 옮겨지는 문제를 지적했다. 미국에서 생산된 반도체를 해외에서 패키징할 경우 공급망과 국가 안보에 위험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최근엔 반도체가 첨단무기나 사이버 전쟁이나 인공지능(AI), 자율주행 시스템, 5세대 이동통신(5G), 양자 컴퓨팅 등을 뒷받침하는 시대라 국가 안보 필수재로서의 가치가 더 커졌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미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번 투자는 삼성이 미 국방부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위해 직접 반도체를 제조할 수 있도록 하는 일련의 약속과 함께 이루어졌다”며 “국가 안보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무어의 법칙에 따라 에너지 효율적이고 고성능의 칩을 생산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면서 칩을 패키징하는 방식은 전체 성능에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삼성은 업계에서 가장 진보된 메모리와 고급 로직을 구현하는 유일한 플레이어”라고 평가하며 “그래서 이번 발표에서 패키징 시설 건설이 가장 특별한 부분”이라고 짚었다.
삼성은 현지 반도체 우수인력 육성을 위해 4000만달러(약 550억원) 규모의 기금도 투입하기로 했다. 러몬도 장관은 삼성의 이번 투자를 통해 최소 1만7000개 이상의 건설 일자리, 4500개 이상의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가 생길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의 미국 투자는 미국만을 위한 게 아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생산과 연구개발을 위한 핵심 시설은 국내에 두더라도 경쟁력 확보를 위해 미국 내 생산시설 확충과 고급 인력 확보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이며 중국과의 반도체 패권 전쟁 주무대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 파운드리 공장이 가동 중이고, 같은 주 테일러에는 추가 파운드리를 건설 중이다.
미국 기업인 인텔과 마이크론, 대만의 TSMC 등 경쟁사도 앞다퉈 대미 투자 확대에 나서고 있다. 인텔의 투자 규모는 1000억달러, 마이크론은 1150억달러에 달한다.
수요 확대가 기대되는 점도 미국 투자 확대의 한 요인이다. AI 확산으로 관련 반도체 수요가 높은 엔비디아와 AMD 등 주요 빅테크 고객사들이 미국에 집중돼 있다. 구글이나 메타 등은 자체 AI 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AI 반도체가 맞춤형으로 진화하면서 고객사들과 가깝게 소통하면서 제조와 패키징까지 진행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편 삼성전자 보조금이 발표되면서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에 지급될 보조금 규모도 주목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38억7000만달러(약 5조2000억원)를 투자해 AI 반도체에 필요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생산 기지를 짓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공장에선 2028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등 AI 메모리 제품을 양산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도 미국 정부에 반도체지원법에 따른 반도체 생산 보조금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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