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곳 없이 수년간 어둡고 습한 창고에 사실상 방치됐던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울산시는 “동네 재활용센터에 있는 고헌 박상진(1884~1921) 의사 동상을 다음 달 끄집어내서 세척 등을 한 뒤 남구 문화예술회관 인근 문화공원에 옮겨 전시하기로 했다”고 25일 밝혔다.
이에 따라 시는 울산시의회에 박상진 의사 동상 이전 사업비 4500만원이 담긴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했다. 사업비에는 오랫동안 창고에 방치돼 녹슨 박 의사 동상을 세척하기 위한 비용 500만원이 포함됐다. 추경예산안이 오는 30일 울산시의회 본회의에서 통과하면, 시는 재활용센터에서 세척 등 보수작업을 한 뒤 오는 7월 동상을 옮길 계획이다. 남구 문화공원에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이 있다. 울산시 관계자는 “박 의사의 생가가 있는 북구로 이전을 검토했지만, 이미 그곳에 박 의사 동상 3개가 있다”면서 “문화공원 항일독립운동기념탑에 박 의사의 이름도 새겨져 있고, 동상을 세울 공간도 있다”고 설명했다.
박 의사의 동상은 1982년 울산청년회의소가 제작한 것이다. 동상 높이는 2.5m, 동상받침대 2.75m, 무게 30t 크기다. 울산 중구에 있던 ‘JC동산’에 세웠지만, 이후 도로개발사업으로 1997년 인근 북정공원으로 옮겼다. 또 몇 년 후 북정공원이 울산시립미술관 건립 터에 포함되면서 2017년 11월 재활용센터로 옮겼다. 재활용센터로 갈 당시엔 금방 역사문화공원을 새로 만들어 동상을 세울 계획이었지만, 차질이 생겼다. 공원 조성 시기가 2029년으로 늦춰진 때문이다. 박 의사 동상은 기약없이 회색 비닐에 덮인 채 폐현수막 등 재활용쓰레기를 쌓아둔 창고 신세를 져야 했다. 이에 독립운동가의 동상을 창고에 방치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시민들의 염원으로 만든 동상을 짧은 기간도 아닌 10년 이상 창고에 두는 게 맞지 않다면서다.
울산 출신인 박 의사는 항일 비밀결사인 신민회에서 활동했다. 1910년 판사시험에 합격해 평양법원에 발령받았지만 “독립운동가를 내 손으로 단죄할 수 없다”며 사퇴했다. 이어 1910년대 전국 규모 항일 비밀결사인 광복회 총사령을 지냈다. 광복회는 1915년 8월 대구에서 창설돼 친일부호 처단, 일제 세금 탈취, 조선총독 암살 시도 등 항일활동을 했다. 1918년 체포된 박 의사는 1921년 38세 나이로 대구감옥에서 순국했다. 이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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