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치료라도 받았다면….”
지난 3월 말 충북 보은에서 태어난 지 3년도 채 안 된 어린이가 숨졌다. 처음 이송된 병원에서 잠시 호흡이 돌아왔던 그 아이는 “병상이 없다”, “의료진이 없다”는 이유로 충북과 대전, 세종, 충남, 경기의 11개 상급종합병원의 전원 거부 및 지연으로 숨을 거뒀다. 그의 할머니는 김영환 충북지사를 만나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며 참척(慘慽)의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치과의사 출신인 김 지사는 “필수·응급 의료체계의 사각지대에 있는 충북의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사고”라고 안타까워했다.
충북의 열악한 필수·지역의료 서비스의 민낯은 이뿐만이 아니다. 3월22일 충주시 수안보면에서 전신주에 깔린 사고를 당한 70대 할머니가 신고 9시간여 만에 숨졌다. 할머니 역시 인근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서 전원을 거부한 탓에 골든타임을 놓쳤다. 결국 충주에서 약 100㎞ 떨어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으로 향하다가 숨을 거뒀다.
“가족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의료취약지인 농어촌에서는 그 모든 것의 운명을 한순간에 가르는 곳 중 하나가 병원이다. 농어촌 병원에서 손을 쓸 수 없으면 수십∼수백㎞ 떨어진 상급종합병원으로 향해야 한다.
장기화하고 있는 필수·지역의료 공백 사태 속에 전국 각지에서 발생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에 마음이 무겁다. 농어촌지역 중증·응급 환자는 가까운 곳에 적절한 치료·수술을 받을 만한 병원이 없어 생명을 잃는 일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 제2조 제10조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특히 농어촌 주민들의 의료서비스를 받기 위한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응급의료 취약지는 전남 완도군과 경북 의성군 등 98개 시?군에 이른다. 이들 의료취약지 병원들은 필수의료의 선봉장이자 최후의 보루라는 사명감으로 버텨왔지만, 지속된 경영난과 의료인력 구인난 등이 한계에 달했다는 게 지난해 1월 창립한 ‘농어촌 의료취약지 병원장협의회’의 진단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지난달 2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회의에서 “위기에 처한 지역의료의 정상화는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국가의 헌법적 책무”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같은 명목의 세금을 내는 이상 언제 어디서나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한다. 복지 혜택도 균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다. 의대 정원 확대로 첨예화하고 있는 의정(醫政) 대립이 국민 생명까지 위협해서는 안 된다. 5월 가정의 달에는 ‘모든 것’의 다름 아닌 가족을 돌아보게 마련이다. 누구나 또는 누구의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정치나 이념, 이권 등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농어촌 주민들도 ‘모든 것’을 건강하게 지켜나갈 수 있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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