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이걸 정이라고 해.”
유튜버 영국남자가 한국에 처음으로 여행을 온 친구에게 정을 알려준다. 전통시장을 찾은 그들은 처음 만난 커플에게 전을 얻어먹는다. 삭힌 홍어를 먹고 당황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같이 앉은 시민들이 까르르 웃는다. 다 같이 한바탕 웃은 그들은 막걸리 잔을 부딪치며 어느새 이웃이 된다.
외국인 친구가 한국에 왔다면 한 번쯤은 데려와야 하는 곳. 바로 전통시장이다. 호떡, 어묵 같은 주전부리를 하나씩 쥐고 한 바퀴 둘러보면 없는 게 없어 구경하는 맛이 난다. 저녁에 먹을 찬거리를 사면서 괜스레 좀 더 달라며 애교를 부린다. 핀잔과 함께 “넉넉하게 넣었다”며 웃는 상인. 전통시장은 한국에서 ‘정’을 느낄 수 있는 몇 안 남은 장소 중 하나다.
경기 안산시에는 딱 한 곳의 전통시장이 있다. 88올림픽 당시 거리 정화 차원에서 노점상들을 한곳에 모아 만들어진 안산시민시장은 한때 오일장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한때 북적이던 시장은 이제 반 정도가 텅 빈 채 12월로 예정된 폐쇄를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대다수의 전통시장이 현대화된 대형 마트와의 경쟁에 밀려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시민시장은 좀 다르다. 점포를 운영하는 상인이 장사를 그만두면, 그 점포는 폐쇄된다. 사실상 2000년도에 마지막으로 명의 이전이 된 이후 시민시장은 이렇게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점포를 떠나가면 시장의 불빛도 하나씩 꺼지는 것이다.
대다수의 주민은 이미 시장을 버린 지 오래다. 주변 주민들은 오일장을 열던 당시 악취와 소음으로 인해 이미 한 차례 등을 돌렸고, 이제는 대형 마트나 복합 문화시설을 바라며 시장의 폐쇄를 기다리고 있다. 주변 주민들뿐만 아니라 안산시민 전체가 학교 또는 복합 문화시설을 바란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전통시장 활성화 및 현대화를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던 상인들은 이제 모두의 눈엣가시가 되어버렸다.
최근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이 바가지요금으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부실한 구성의 모둠전을 1만5000원에 팔고, 6000원인 순대를 1만원으로 둔갑시켜 판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렇듯 훨씬 큰 규모의 전통시장도 꾸준히 관리해 주고 개선점을 찾아내지 않는다면 문제가 생긴다. 경기 광명시에는 한때 노천시장이었던 광명전통시장이 있다. 하지만 시민시장과 달리 광명시장은 노무현정부 시절 추진했던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깨끗하고 정리된 전통시장으로 거듭났다. 이제는 경기 지역 3대 전통시장으로 불릴 만큼 유명한 시장이 되었다. 시민시장도 광명시장처럼 현대화 사업을 거쳐 개선되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시대가 변하면서 많은 전통시장이 존재 가치에 대해 위협을 받고 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전통시장보다는 대형 마트, 인터넷 쇼핑 위주의 소비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통시장은 단순히 상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점차 사람들 간의 접촉이 사라지는 시대에 지역의 정서와 문화를 교류하고 전통을 이어 나가는 몇 없는 소통의 공간이다. 부디 안산시민시장이, 전국에 남아 있는 전통시장이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기록의 한 조각으로 남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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