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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여러분 밤이 깊었습니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1970년대 매일 밤 10시가 되면 라디오에서 나오던 방송 내용이다. 차분한 음악을 배경으로 여성 성우가 청소년의 귀가를 종용했다. 어린이들에게는 취침을 알리는 시보와도 같았다.

야간 통행금지를 영어로 ‘curfew’라고 한다. 고대 프랑스어 ‘couvre-feu’에서 유래했다. 덮는다는 뜻의 ‘couvrir’와 불을 뜻하는 ‘feu’가 합쳐진 것이다. 중세 유럽에서는 야간에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불을 끄던 관습이 있었다. 도시나 마을에서 밤중에 정해진 시간에 종을 울려 주민들에게 불을 끄도록 했다. 1·2차 세계대전 같은 때에는 적의 공습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야간 등화관제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등보다는 야간 통금이나 자녀 외출금지의 의미로 더 쓰이게 됐다.

우리나라 야간 통금의 역사는 제법 길다. 조선 시대에는 인정(人定)이라고 해서 밤 10시30분에 종을 28번 쳐서 통행금지를 알렸다. 새벽 4시30분에 33번 종을 쳐 해제를 알리는 게 파루(罷漏)다. 1945년 해방 직후엔 미군정 포고령 1호에 의해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 야간통행이 금지됐다. 6·25전쟁과 군사정권 시절 등을 거치면서 시간과 지역에 변화가 있었으나 1982년 1월5일까지 이어졌다. 야간 통금이 해제된 건 서울올림픽 개최 덕이다. 1981년 독일 바덴바덴에서 개최지 결정이 나면서 후진적 야간 통금이 37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야간 통금이 해제 43년 만에 서울 북촌한옥마을 일대에 다시 도입된다. 서울 종로구가 내년 3월부터 삼청동과 가회동 일대에서 오후 5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관광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를 어기면 10만원 안팎으로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주민들이 밤낮으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한 데 따른 것이다.

세계 곳곳 유명 관광지마다 오버투어리즘(과잉관광)으로 몸살을 앓는다. 지구촌답게 핫플로 소문나면 금세 각국에서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오죽하면 얼마 전 일본 후지산 촬영 명소인 한 편의점이 차단막을 쳐서 후지산 전망을 가려버렸을까. 아파트 위아래층에서나 지구촌에서나 자기 편의를 위해 남의 평온에 아랑곳하지 않는 세태가 씁쓸하다.


박희준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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