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 부탁’ 폭로를 사과했을 때야말로 한동훈 후보가 당권 주자 자리에서 물러날 최후의 타이밍이었다는 취지로 전원책 변호사가 주장했다.
보수 논객으로 분류되는 전 변호사는 22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절대 ‘아차’ 싶었다는 건 없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이어 “아무리 토론 경험이 없지만 두뇌 순발력 있는 사람들이 ‘아차’ 싶었다는 게 어디 있나”라며 “다 미리 준비된 멘트”라고 강조했다.
전 변호사는 “‘이것까지 내가 내놓겠다’ 이런 게 머릿속에 플랜A, 플랜B, 플랜C 이렇게 딱딱 들어가 있다”며 “그런데 그것이 하루 만에 입장이 바뀌었고, ‘완전히 분위기가 뭐 이런 X같은 경우가 있어’ 이렇게 됐다”고 짚었다.
앞서 한 후보는 지난 1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어제 ‘공소 취소 부탁 거절 발언’은 ‘왜 법무부 장관이 이재명 대표를 구속 못 했느냐’는 반복된 질문에 아무리 장관이지만 개별 사건에 개입할 수 없다는 설명을 하는 과정에서 예시로 나온 사전에 준비되지 않은 말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은 공수처법 등 악법을 막는 과정에서 우리 당을 위해 나서다가 생긴 일”이라며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고생하는 분들을 폄훼하려는 생각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한 후보는 “대표가 되면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 재판 법률 지원을 강화하고, 여야의 대승적 재발 방지 약속 및 상호 처벌불원 방안도 검토, 추진하겠다”면서 “당을 위해 헌신한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과 함께 용기 내어 싸웠던 분들의 피해가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의 발언에 대한 당내 비판이 이어지자 하루 만에 한 후보가 사과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그가 정치 입문 후 자신의 언행에 공개적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후보는 서울시의회 행사 참석 후 기자들과 만나 “조건 없이 사과한 것”이라며 “저도 말하고 ‘아차’ 했다. 이 얘기를 괜히 했다고 생각했다”고도 말했다.
한 후보는 지난 17일 방송 토론회에서 나 후보의 주도권 토론 중 “나 의원님께서 저에게 본인의 패스트트랙 사건 공소 취소를 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지 않나”라며 “저는 거기에 대해서 제가 그럴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였다.
2019년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이던 나 후보가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재판 중인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이던 한 후보가 나 후보로부터 이 사건의 공소를 취소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얘기다.
구체적 사안에 법무부 장관이 개입할 수 없다는 맥락의 한 후보 발언이지만, 당내 ‘친윤(친윤석열)계’ 등은 즉각 한 후보의 말이 부적절했다고 난타했다.
‘원조 친윤’으로 꼽히는 권성동 의원은 SNS에서 “한 후보가 형사사건 청탁 프레임을 들고나왔다”며, “당 의원 개개인의 아픔이자 당 전체의 아픔을 당내 선거에서 후벼 파서야 되겠나”라고 비판했다.
당 대표를 지냈던 김기현 의원도 “폭주하는 민주당의 악법을 막는 정의로운 일에 온 몸을 던졌다가 억울한 피해자가 된 우리 동지들의 고통에 공감하지는 못할망정,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SNS에서 한 후보를 겨냥했다.
한 후보의 ‘아차 싶었다’는 해명이지만, 모든 게 머릿속에서 짜인 각본이라고 전 변호사가 주장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타이밍에 한 후보가 해명을 내놓을 게 아니라 후보에서 물러난다는 발표를 해야 했다면서 ‘기회’라는 표현을 전 변호사는 썼다.
전 변호사는 “후보에서 물러나고 ‘지난 선거 패배의 책임도 내게 있다’(라고 말해야 했다)”며 “‘내가 자숙하면서 공부도 하겠다’, ‘우리 보수의 재건을 위해’(라는 말을 해야 했다)”라고 말했다. 후보직에서 사퇴했어야 한다는 전 변호사 주장은 지난해 초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한 후보의 ‘화양연화(花樣年華)’ 발언과도 무관치 않다.
한 후보는 법무부 장관이던 지난해 2월,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어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한다’던 당시 김영호 민주당 의원 질의에 “저는 민주당에 적개심이 없다”며 “오히려 민주당에 저에게 적개심을 드러낸 것 같다”고 응수했었다.
이 대목에서 한 후보는 “제 검사 인생의 ‘화양연화’는 문재인 정권 초반기 (박근혜 정부) 수사들일 것”이라며 “당시에 (민주당이) 저를 굉장히 응원해주셨고, 열렬히 지지해주셨던 것을 기억한다. 전 그때와 달라진 게 없다”고 서로 오해가 잘 풀리기를 바랐다.
전 변호사는 라디오에서 이를 두고 “보수를 궤멸시키고 그 당사자인 한동훈이 자기에게 ‘화양연화’ 같은 시절이었다고 말할 정도인 것 같으면, 보수 정당의 당 대표로 출전해서는 안 된다”며 “다른 당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쏘아붙였다. 나 후보 얘기 폭로부터 이미 한 후보는 정치의 ‘정도(正道)’를 벗어났다는 얘기다.
국민의힘은 23일 오후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전당대회를 열어 대표를 비롯한 새 지도부를 선출한다. 전날 끝난 당원 대상 투표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를 각각 80%, 20%의 비중으로 반영해 당 대표 1명과 최고위원 4명, 청년최고위원 1명의 당선자가 선출된다.
하이라이트인 당선자 발표는 오후 4시30분쯤부터 시작된다. 대표 선거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면, 청년최고위원·최고위원·대표 당선자들의 수락 연설 후 황우여 비상대책위원장이 새 대표에게 당기를 인계하며 행사가 종료된다.
차기 대표를 놓고 원희룡·윤상현 그리고 한 후보와 나 후보가 4파전을 벌이는 가운데,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오는 28일 1·2위 후보 간 결선투표가 이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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