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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고 함께 가는 인간, 예술로 승화… 공생공존을 그리다

입력 : 2024-08-05 20:42:58 수정 : 2024-08-05 22: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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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특별전 ‘고암, 인간을 보다’

화업 전반서 사람에 관한 애정 드러내
대표작 ‘군상’ 등 ‘인간시리즈’ 집중 조명
회화·도자기화 등 작품 100여점 전시
9월 8일까지 가나아트센터서 진행

동백림사건 투옥 겪고 군중 주제 천착
“진정한 예술가, 대중 편에 서야” 설파
인간·평화·통일 등 메시지 작품에 담아
디자인·민속공예 등까지 폭넓게 활동

“내 그림 제목은 모두 ‘평화’라고 붙이고 싶어요. 저봐요. 서로 손 잡고 같은 율동으로 공생공존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삶이 곧 평화지 뭐.”(이응노, 1988)

‘군상’(1985) ⓒ Lee UngNo / ADAGP, Paris·SACK, Seoul, 2024 가나아트 제공

인간의 형상은 고암 이응노(顧菴 李應魯, 1904∼1989)의 작업에서 꾸준하게 등장하는 소재였다. 1960년대 초 고암은 인간을 서로 손 잡고 있거나 어깨동무한 모습의 군중 형태로 표현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기호가 아닌 하나의 주제로 여겨진 것은 그가 1967년 동백림사건으로 투옥돼 고초를 겪은 이후부터다.

1950년대까지 고암은 서민들의 생활상을 증언하는 방식으로 화폭에 인간을 담았다. 프랑스 파리에 정착한 1960년 이후에는 한동안 콜라주, 문자추상작업 등으로 추상화면을 구성하는 데 집중했다. 이 시기 그의 작품 속 인간은 정치적, 사회적 의미가 배제된 채 추상화된 풍경의 일부, 혹은 ‘구성’ 연작의 상형기호로 등장할 뿐이었다. 그러다 2년 반의 수감생활을 거치면서 사회적 약자, 정치적 상황과 삶의 관계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한다. 그림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발언을 해야 한다고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각을 계기로 ‘인간’과 함께 ‘평화’, ‘통일’ 등의 메시지가 그의 작품에서 출현한다.

고암 탄생 12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이 ‘고암, 인간을 보다’라는 주제를 내걸고 9월8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린다.

‘군상’(1988)

고암의 대표작 ‘군상’을 중심으로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집중적으로 나타난 ‘인간시리즈’를 조명한다. 고암은 화업 전반에 걸쳐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특히 타계 직전까지 매진한 ‘군상’ 연작은 그가 평생을 관통해 다다른 인간탐구의 종착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대중의 편에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설파하며 인간을 향한 예술을 실천한 이응노의 예술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회화와 조각은 물론 크리스털, 도자기화 등 총 100여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이응노는 1960년대부터 회화를 넘어 공예나 디자인 영역도 섭렵했다. 그가 1986년 프랑스 크리스털제조사인 바카라와 협업해 제작한 ‘올림픽 크리스털’ 여섯 종과 1988년 조카 이강세의 도자기에 그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올림픽 크리스털’ 여섯 종 모두를 한자리에서 소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군상’(도자기화, 1988)

이응노의 ‘옥중조각’, 일명 ‘밥풀조각’도 반갑다. 세 점이 출품됐다. 작가는 출소 후 기자회견에서 안양교도소 수감 시절(1968년 12월23일~1969년 3월7일) 죄수들이 밥풀을 뭉쳐 장기말을 만드는 것을 보고 같은 방 수인들이 남긴 밥이나 심부름하는 사람을 통해 얻은 밥찌꺼기를 짓이기고 신문지 등과 반죽해 조각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이로 인해 고암의 밥풀조각은 안양교도소로 이감된 이후 제작된 것이라 여겨져 왔으나,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부조 뒷면에 ‘재료(材料) 먹다가 남은 밥과 그리다가 바린(버린) 창호지(窓戶紙) 외피지(外皮紙)를 사용(使用)한 것이다. 68(년) 시월(十月) 대전(大田)에서 이응노 창작(創作)’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어, 그가 이미 대전교도소 수감 시절(1968년 8월3일~1968년 12월23일)부터 밥풀조각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밥풀조각은 고암이 투옥 전 전개한 ‘구성’ 연작처럼 인간이나 동물을 본뜬 듯한 기호들이 한데 뒤섞인 형태인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후에 여러 사람이 나란히 서서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함께 춤을 추는 입상(立像) 형태로 발전한다. 이응노는 이렇게 서로 손 잡고 같은 춤을 추는 인간의 형상을 두고 “공생을 염원하는 민중”이라 칭했다. 훗날 ‘군상’ 연작의 시원이 된다.

'군상'(1989)

고암은 1969년 석방된 이후 문자추상이라는 독자적인 양식을 개발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사람을 그렸다. 1970년대 들어서 그는 가구, 크리스털, 무대나 무용의상을 디자인하고 민속공예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갔다. 전보다 훨씬 화려한 색채와 무늬를 사용해 인물을 표현했고 군무(群舞)를 추는 모습을 다수 그렸다. 3∼5명의 사람이 어깨동무하고 서로 한몸이 되어 마치 날개를 펼치듯 만세를 부르는 그림이 많던 때다. 여기서 나타나는 굵은 획과 이를 두르고 있는 윤곽선, 그리고 도식적인 구조는 후기 문자추상작업의 주된 표현법으로, 추상에서 ‘군상’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80년 파리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소식을 접한 이응노는 “지금까지 추상만 해왔다. 그러나 ‘군상’부터는 구상으로 바꿔서, 이 혼란한 시기에 좀 더 명료하게 평화, 남북통일 등의 염원을 좀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전달하겠다”고 다짐하며 작업에 큰 변화를 꾀했다.

추상보다는 구상작업, 그중에서도 인간시리즈, ‘군상’ 연작이 사회적 발언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고암은 ‘인간시리즈’를 두고 통일무(統一舞)라고 말했다. 통일된 광장에서 환희의 춤을 추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 ‘군상’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에서 두 손을 높이 들고 춤을 추는 형태나 손에 악기를 들고 있는 모습, 상모돌리기가 연상되는 형상이 관찰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는 200호 이상의 대형 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전면에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빼곡히 그려 넣어 집단적 움직임을 표현했다. 고암은 ‘군상’의 주제가 광주민주화운동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 보편의 가치가 되기를 바랐다. ‘군상’ 속 사람들이 성별, 인종, 나이 등을 가늠할 수 없는 익명 형태인 이유다. 각기 다른 몸짓으로 모여 ‘반전(反戰)’, ‘평화(平和)’와 같은 문구를 이루기도 한다.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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