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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란의시읽는마음]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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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08-05 23:16:03 수정 : 2024-08-05 23: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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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희덕
너무도 여러 겹의 마음을 가진
그 복숭아나무 곁으로
나는 왠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서 있는 그 나무는 아마
사람이 앉지 못할 그늘을 가졌을 거라고
멀리로 멀리로만 지나쳤을 뿐입니다
흰꽃과 분홍꽃 사이에 수천의 빛깔이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나무를 보고 멀리서 알았습니다
눈부셔 눈부셔 알았습니다
피우고 싶은 꽃빛이 너무 많은 그 나무는
그래서 외로웠을 것이지만 외로운 줄도 몰랐을 것입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데 참 오래 걸렸습니다

흩어진 꽃잎들 어디 먼 데 닿았을 무렵
조금은 심심한 얼굴을 하고 있는 그 복숭아나무 그늘에서
가만히 들었습니다 저녁이 오는 소리를

주먹보다 큰 복숭아를 하루에 한두 개씩 깎아 먹는다. 지금은 복숭아의 계절. 잘 여문 복숭아를 베어 물다 문득 생각하기를, 아, 이 열매 이전에는 꽃이 있었겠구나. 시를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기를, “흰꽃과 분홍꽃을 나란히 피우고” 선 한 그루 나무가 있었겠구나. 흰꽃과 분홍꽃 사이 “수천의 빛깔”. 복잡한 꽃빛. 마치 사람의 마음속처럼. “피우고 싶은 꽃빛”이 많아 외로운 나무였으려나. 생각하다 보면, 그 여러 겹의 마음을 읽는 일은 어떻게 가능한지 묻고 싶어진다. 얼마나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이는 어쩌면 사람이 사람을 헤아리는 일, 사랑하는 일에 대한 은유일 거라 짐작해 보기도 한다.

 

꽃이 진다는 것은 “수천의 빛깔”을 잃는다는 것. 빛깔을 떨군 나무의 얼굴은 조금 심심해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한 시절을 다 흘려보낸 사람의 것과 같이. 그 곁으로 다가가 한 번쯤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곧 생겨날 열매에 대해. “수천의 빛깔”로 단단히 익어갈 열매.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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