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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캉스의 원조는 프랑스다. 1936년 세계 최초로 연간 15일의 근로자 유급 휴가가 법제화됐다. 약 50년 후 유급 휴가는 5주로 늘어났고 여가담당 장관까지 생겼다. 7월14일 프랑스혁명 기념일을 기점으로 그다음 주말을 ‘그랑 데파르(grand depart·대출정)’라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 달 휴가를 가기 위해 11개월을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휴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서방 국가 정상들도 못지않다. 여름철 2∼3주씩, 연간으로는 30일 이상의 휴가를 즐기고 긴급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1995년 7월 보스니아에서 이슬람교도 남성과 아동 8000명이 학살당했지만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문제가 있다면 그냥 내버려두라’라는 말을 남기고 3주간의 휴가를 떠났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14년 여름 흑인 소요사태, 이슬람국가(IS)의 미국인 기자 참수사건 와중에도 16일간이나 휴가를 즐겼다. 2013년 5월 영국 런던에서 영국군이 이슬람 급진주의자에게 참수당하는 테러가 발생한 지 사흘 만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가족과 함께 제트기를 타고 스페인 휴양지로 날아갔다.

한국 대통령은 딴판이다. 휴가는 1년에 한 차례, 길어야 일주일이고 그마저 생략되기 일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외환위기, 두 아들의 검찰 조사 등으로 제대로 휴가를 보낸 적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4년 탄핵사태, 2006년 태풍, 2007년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건 등으로 임기 중 세 번의 휴가를 포기했다.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굵직한 사건, 사고 탓에 3년 연속 휴가를 가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어제 휴가에 들어갔다. 전통시장 등 민생현장을 둘러보거나 군 장병을 격려하고 하반기 정국 구상, 거부권 행사도 할 모양이다. 중요한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지친 심신을 추스르는 휴식과 재충전은 더 필요하다.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과도한 스트레스로 판단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아무리 워커홀릭 지도자라도 1년 내내 일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휴가를 가도 국정이 시스템에 의해 작동해야 선진국 아닌가. 이제 쉬는 것조차 업무의 연장이던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나 만기친람하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과 결별할 때가 됐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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