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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참 좋아했는데 언젠가부터 여름이 공포로 변하고 있다.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가 머릿속에서 계속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 무시무시한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에어컨이 없는 곳에선 가만히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삽시간에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할 수 없어 짐을 챙겨 동네 카페로 간다. 카페 안에도 피서(?) 나온 사람들로 빈자리가 거의 없다. 겨우 찾아낸 구석 자리.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제대로 숨쉬기가 잘 될 만큼 시원하다, 시원하다, 시원하다.

나는 가져온 책을 펼친다. 책을 펼칠 때마다 이 책에서 오늘은 무엇을 발견할까? 내가 몰랐던 새로운 단어와 어떤 멋진 문장을 만날까? 두근두근 내 눈은 반짝인다. “독서는 소리 없는 절도이다. 올빼미의 마술적인 비상과 흡사하다”는 파스칼 키냐르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하면서 책 도둑이 될 만반의 자세를 취한다.

내가 아는 남자는 한 달에 20권가량의 책을 읽는다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독서 말고도 세세하게 집중해야 할 것이 많은 나는 그 반만 읽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엇이든 나를 어떤 통제하에 계획하에 두는 게 싫고, 또한 독서에 어떤 사명감 같은 걸 부여하고 싶지도 않다. 책을 좋아하니까 책의 세계가 너무 좋으니까 계속해서 책을 찾아다닐 뿐이다. 그렇게 한 권의 책 읽기가 끝나면 내 노트에 빼곡히 담기는, 그 책에서 훔친 문장들과 단어들. 그 엄청난 쾌감이 좋아 파스칼 키냐르가 말한 ‘올빼미(지혜의 여신)의 마술적인 비상’, 그 황홀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 절도 포식만큼 나를 기쁘고 즐겁게 하는 상상놀이도 없고, 그 절도 행각의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독서에 대한 열광과 갈망도 더욱 커지고, 이 세상에 이토록 아름답고 무섭고 낭만적이고 아프고 슬픈 단어가 많았다니, 몰아지경에 빠져 그 어떤 절해고도에서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지는, 성스러울 정도로 색다른 차원의 자유로운 나를 느끼게 해주는 게 좋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파스칼 키냐르처럼 조류도 고양잇과도 아니어서 아직은 더 높이 날지도 더없이 우아하고 날렵하지도 못해 혼자 바둥바둥 이 책 저 책으로 흘러다니는 중이라 충분히 감탄할 만큼의 대도(大盜)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언제나 ‘책을 펼침으로써, 책 안에 거주함으로써, 책을 읽음으로써’ 좀 더 나은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작가가 되려고 오늘도 언어의 거미줄 짜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글쓰기는 이미 내게 생계필수산업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 글쓰기를 통해 나를 더 잘 보살펴야 하고, 어떤 올빼미보다 더 멋진 비상을 꿈꿔야 하므로 내 독서는 계속될 것이고 언어 절도 행각도 계속될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책은, 책만은 언제나 내겐 새로우니까.


김상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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