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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稅 폭탄에 기업매각·폐업 속출
부자도 ‘세금 천국’ 찾아 이탈 급증
베이비부머 은퇴기 중산층도 공포
28년 만의 개편 더는 실기 말아야

한국만큼 부자와 기업이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는 나라는 드물다. 상위 1%의 납세자가 소득세 세수의 절반가량을 낸다. 대신 근로소득자 10명 중 하위 4명은 한 푼도 물지 않는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는 1% 상위 비중이 88%, 70%(2022년 기준)에 이른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라는 조세원칙과 거꾸로다.

상속세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 최고세율이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일본(55%)에 이어 두 번째다. 주식 상속 때 20% 할증까지 더하면 최고세율은 60%로 세계 1위다. 15개국은 상속세가 없고 나머지 국가도 평균치가 26%다. 전체 조세에서 상속·증여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2.42%(2021년 기준)로 OECD 평균(0.42%)의 6배에 육박한다. 좁은 우물에서 물을 너무 많이 퍼내니 탈이 나지 않을 리 없다.

주춘렬 논설위원

재계에선 ‘상속세를 두세 번 내면 경영권이 사라진다’, ‘자녀가 아니라 정부가 상속받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엄살이 아니다. 국내 최대 게임업체 넥슨은 창업자 사망 후 주식 물납을 받은 정부가 2대 주주로 올랐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가업승계를 포기하고 매각 또는 폐업하는 사례도 허다하다. 오죽하면 영국 싱크탱크 애덤스미스연구소(ASI)가 “(상속세율) 60%는 사실상 도둑질이자 기업 죽이기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했을까.

부자들은 싱가포르와 같은 세금 천국을 찾아 떠난다. 영국 투자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드파트너스에 따르면 순자산 100만달러 이상인 한국인의 순유출 규모는 2022년 400명, 2023년 800명에서 올해 1200명으로 불어난다. 중국(1만5200명), 영국(9500명), 인도(4300명)에 이어 세계 4위지만 인구 대비로 따지면 가장 많은 수준이다.

베이비부머가 대거 은퇴기에 들어서면서 상속세 공포는 중산층까지 퍼져 간다. 1차 베이비부머(1955∼63년생)는 705만명, 2차 베이비부머(1964∼74년)는 954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지만 고도성장기에 편승해 부를 축적해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60세 이상 고령층의 순자산은 지난해 3856조원에 달한다. 이들의 순자산 비중은 2011년 28%에서 42.4%로 뛰었다. 20·30세대는 15.6%에서 11.3%로 쪼그라들었다. 이대로라면 부모의 부는 상속 장벽에 막혀 궁핍한 청년세대로 흘러가기 어렵다. 부자 ‘엑소더스’에 속도가 붙고 소비와 투자도 얼어붙을 게 뻔하다.

과거 조세제도가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 사례는 열거하기조차 힘들다. 15세기 말 황금기를 구가했던 스페인은 금융·유통을 장악했던 유대인을 추방하는 ‘알람브라 칙령’을 반포하면서 경제가 급속히 붕괴했다. 복지국가 스웨덴은 1980년대 상속세율이 70%에 달했는데 기업과 부자의 이민이 꼬리를 물었다. 제약회사 아스트라는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영국 제네카에 매각됐고 유명 가구회사 이케아, 우유 팩의 원조 테트라팩도 네덜란드와 스위스로 떠났다.

정부가 올해 세법개정안에서 25년 만에 상속세를 손질하기로 했다. 최고세율을 50%에서 40%로 낮추고 자녀 공제 금액도 1인당 5000만원에서 5억원으로 10배 높이는 게 핵심이다. 이 정도로 숱한 부작용을 해소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런데 이마저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어깃장을 놓는다. 상속세(최고세율 40%)가 근로소득세(45%)보다 낮아선 안 된다고 펄쩍 뛴다. 생전에 소득세를 내고 모은 재산에 죽은 뒤 더 많은 세금을 물리자는 궤변이다. 외려 이중과세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선진국처럼 상속인 각자가 물려받은 재산에 과세(유산 취득세)하는 게 옳다.

인력과 자본, 기술이 장벽 없이 이동하는 21세기에 징벌적 세제에 집착하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이미 극심한 세금 편중이 ‘황금알을 낳는’ 기업과 자본의 ‘배’를 가르고 있다는 위험신호가 울리고 있지 않은가. 세제에 정통한 김진표 전 국회의장은 얼마 전 “좋은 세금은 부자가 되기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이제라도 부자 감세와 대기업 특혜라는 낡은 틀과 결별해야 한다. 정치권의 대오각성이 절실한 때다.


주춘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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