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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동균

빈집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사랑하였다

저문 연못에서 흘러나오는 흐릿한 기척들을 사랑하였다

땡볕 속을 타오르는 돌멩이, 그 화염의 무늬를 사랑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어

창틀에 낀 먼지, 깨진 유리 조각, 찢어진 신발,

세상에서 버려져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을 사랑하였다

 

나의 사랑은

부서진 새 둥지와 같아

내게로 오는 당신의 미소와 눈물을 담을 수 없었으니

 

나는

나의 후회를

내 눈동자를 스쳐간 짧은 빛을 사랑하였다

나는 나를 사랑할 수 없다, 하는 고백은 늘 아프게 다가온다. 그 마음속 끊이지 않는 ‘비’를 짐작하겠기에. 겹겹의 후회로 얼룩이 진 폐허를. 동시에 이런 고백은 어째서 아름답게 여겨지는지. 한껏 웅크린 채 조심조심 세상을 응시하는 이의 맑고 여린 눈빛이 떠오르기도 한다. 자신을 사랑할 수 없어 버려진 것들, 제 슬픔을 홀로 견디는 것들을 사랑했다는 시 속 사람에게서도 그와 같은 빛을 느낀다. 그는 세상의 작고 허름한 것들에게서 자신의 얼굴을 보았을 것이다. 도무지 외면할 수 없었을 것이다. 끝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고 후미진 곳을 더듬는 사람. 돌이켜보면 그는 얼마나 열렬히 사랑해왔나. 자신을. 세상을. 언젠가 놓친 “당신의 미소와 눈물”을. 자신의 사랑은 “부서진 새 둥지”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지만, 어떤 새는 분명 그 둥지로 인해 긴한 순간을 버텼을 것이다.

 

시의 제목은 어째서 “빗소리”일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다고 선언한 사람은 제 속에서, 혹은 도처에서 비가 내리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일까. 미처 담지 못했던 “당신”의 눈물 같은 것이 계속해서 곁을 맴도는 것일까.

 

박소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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