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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處暑)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지고 풀도 울며 돌아간다’, ‘입추(立秋)는 배신해도 처서는 배신하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 24절기 가운데 열네 번째인 처서(올해는 양력 8월22일)는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서민들이 창문을 닫고 자는 날의 기준이 처서였다. 아무리 더워도 처서만 되면 마법처럼 시원해진다고 해 ‘처서 매직(magic)’이란 표현도 쓰인다. 우리 조상들은 “다른 건 몰라도 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어제 기준 서울은 29일째, 부산은 25일째, 그리고 제주는 35일째 열대야(밤 최저기온 25도 이상)가 이어졌다. 서울의 경우 최악의 폭염이 닥쳤던 2018년의 26일간 열대야를 넘어섰다. 근대적인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긴 열대야 기록이다. 폭염과 열대야는 처서 이후인 월말 또는 다음달 초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처서 매직’도 이번엔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처서와 관련한 속담들이 바뀌어야 할 판이다.

기록적인 열대야 행진은 새로운 풍속도를 낳고 있다. 에어컨 없이는 잠을 청하기 어려운 탓에 냉방병·감기 환자가 속출한다. 에어컨 과열로 인한 화재가 잇따라 우려를 산다. 젊은 세대는 ‘집캉스(집+바캉스)’ 등 더위와 직접 맞닥뜨리지 않는 방식으로 여름밤을 보내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전국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름휴가 계획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27.8%가 ‘휴가는 내지만 여행은 가지 않을 계획’이라고 답했다. 집에서 나와 심야 공포 체험을 하는 것도 유행이다. 밤늦게 한강 주변을 찾는 피서객이 급증해 편의점 매출이 크게 올랐다고 한다.

대나무 자리 깔고 바둑 두기,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 빈 누각에서 투호 놀이하기, 숲속에서 매미 소리 듣기, 비 오는 날 시 짓기, 느티나무 그늘에서 그네 타기, 서쪽 연못에서 연꽃 구경하기, 달 밝은 밤 탁족(濯足)하기. 다산 정약용 선생이 1824년 여름에 쓴 ‘소서팔사(消暑八事)’란 시에 나오는 8가지 피서법이다. 비록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다산의 지혜와 여유로운 마음을 십분 활용해 막바지 여름을 보내는 게 어떨까.


채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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