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위급환자가 병원 응급실의 이송거부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 파주시에서는 생후 4개월 된 아이가 골든타임을 놓쳐 병원 이송 직후 숨지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당시 119 신고 접수 직후 소방 당국은 가까운 병원부터 12개 병원에 연락을 취했지만 11개 병원이 진료를 거절했다. 생명이 초를 다투는 위급한 상황인데도 병원들은 하나같이 응급실 진료를 거부했다. 아이는 신고 1시간 뒤에야 서울 강서구 마곡동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결국 사망했다.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싣고 갈 병원을 여기저기 찾는 바람에 살릴 수도 있는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어이없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응급환자의 생사는 ‘골든타임’에 달려 있다. 심근경색, 뇌졸중 같은 급성 질환의 경우는 초기 몇 분, 혹은 몇 시간이 환자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병원 응급실은 의료 인력과 병상 부족, 진료과목 등의 이유를 대며 환자의 응급조치를 위한 이송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응급실 위기는 사실 응급의학과 전문의 이탈 사태로 초래된 것인 만큼 대한의사협회와 정부 간 갈등 사태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하지만 의료계가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 7개월째를 이어가며 증원 반대만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료계는 응급실 전문인력이 그리 부족하다면 의사협회는 왜 의대 증원을 반대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 이기주의 아닌가.
‘하려는 자는 방법을 찾고 하지 않으려는 자는 핑계를 찾는다’는 인도 격언이 있다. 당장 숨져 가는 아이의 엄마가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위급상황에서 한 생명이라도 살리겠다는 의사로서 일말의 사명감과 양심이 있다면 응급환자를 수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의사가 어떤 이유를 들어 응급환자의 진료를 편의적으로 취사선택할 수 있는 구조에서 거부당한 구급차는 다른 병원을 찾아 전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는 악화돼 결국 생명까지 잃게 될 수 있다. 실제로 17일 부산에선 신체경련 등으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30대 여성이 수술할 병원을 찾지 못해 숨지기도 했다.
미국 병원 응급실(EMS)은 환자를 거부할 수 없으며 환자가 필요한 응급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법률로 강제돼 있다. 물론 한국도 현행법상 병원이 응급환자를 정당한 이유 없이 수용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당한 이유’의 해석 범위가 너무 넓고 애매하다. 즉, 법이 실질적으로 응급환자의 치료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병원 측은 병상 부족이나 적절한 전문인력 부재 등을 이유로 환자 진료를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어 이를 법적 책임을 회피하는 데 악용하기도 한다. 응급실 환자 수용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가 더욱 강화돼야 하는 이유다.
제도 개선 이전에 의사는 소중한 생명을 살리는 숭고한 직업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국민이 의사를 존경의 의미를 담아 ‘의사 선생님’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이런 표현에 걸맞게 의료계도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더욱 정성껏 살펴주길 진심으로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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