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AS 필요…모텔 투숙객에 유사성행위 혐의 前 시의회 의장
‘신속·야간’ 제명 조치…‘전략 공천’ 시장 선거선 1400여표 차 승부
학폭 자녀 시의원, ‘출당’ 이후 사퇴 여론↑…시의회 與 ‘방탄’ 지원
피해자 측 “진정한 사과” 요구…두 차례 근조 화환 시위 이어져
“편파적이라 생각해 연락드렸습니다.”
이달 22일 휴대전화를 타고 한 여성 당직자의 볼멘소리가 전해졌다. 더불어민주당 공보국 소속이라고 밝힌 이 여성은 ‘○○군수 사건’ 등을 언급하며 성 비위가 비단 민주당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항변했다.
이어 “팩트가 틀렸느냐”는 물음에 “민주당에 부정적 이미지만 부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기사 제목의 ‘또 민주당∼’이라는 표현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였다. 과거 민주당을 둘러싸고 여론이 악화했던 광역시·도 단체장들의 사건을 언급하려다 스스로 입을 닫았다.
내용은 이랬다. 2022년 민주당 소속으로 경기 오산시장 후보로 출마해 불과 1400여표 차로 낙선한 전직 오산시의회 의장이 모텔 투숙객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는 기사였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지난 6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주거침입 준유사강간)로 40대 A씨를 구속기소 했는데, 신원을 확인해보니 지역 유력 정치인 출신이었다.
일단 검찰의 기소 내용만 살펴보면 거대 야당의 공천을 받아 수십만 시민을 위해 일하려던 분이었는지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
기소장에 따르면 올해 1월7일 새벽 4시쯤 평택시의 한 모텔에서 홀로 투숙한 여성의 방에 몰래 들어가 신체 주요 부위를 만지는 등 유사성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물론 ‘무죄 추정의 원칙’이란 게 있다.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를 전제로 피의자와 해당 사건을 바라봐야 한다는 취지다.
A씨도 경찰 조사에서 “물을 가져다준 적은 있지만, 범행을 저지른 사실은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피해 여성의 주요 신체 부위에서 A씨의 유전자(DNA)가 검출되면서 구속됐다.
◆ 前 오산시의장 성범죄 혐의…민주당, 해명 없이 ‘긴급 제명’
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홀연히 사라진 A씨는 그동안 지역사회에서 잊힌 인물이었다. 중진 국회의원의 비서관 출신으로, 시의회에서 일할 때는 다양한 활동으로 안팎의 기대를 모았다.
A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는 봉사”라고 했다. 이런 A씨가 종적을 감춘 뒤 모텔에서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하다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은 지역사회에 충격을 안겼다.
그를 둘러싼 소문은 온라인 공간에서 먼저 돌았다. 유튜브의 한 채널에 그의 친형이 동생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영상 전문가에게 의뢰한 내용이 올라왔다. 그런데 현장 검증과 폐쇄회로(CC)TV 분석을 마친 이 전문가는 A씨의 형과 변호사가 원하던 결과를 내놓지 못했다.
민주당의 반응은 ‘속도전’에 가까웠다. 이달 18일 지역 인터넷 신문에 A씨에 관한 보도가 올라오자 곧바로 긴급 윤리위원회를 열어 A씨를 제명했다. 급작스럽게 저녁에 윤리위가 열리는 건 이례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도당 측은 구속까지 된 만큼 당사자 소명 절차는 생략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후 민주당 측의 공식적인 설명이나 사과는 없다. 민주당이 오산시를 ‘전략선거구’로 지정해 A씨를 검증하고 공천한 배경에 대한 해명은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삼성이나 LG 등 대기업 제품을 구매할 때는 철저한 사후 관리(AS)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한다. 민주당 역시 정치권의 대기업이라 할 수 있다. 철저한 검증을 거쳤다면, A씨에 대한 보증과 재판 결과에 대한 책임에 관해 조금이라도 입을 열어야 한다. 그의 소명조차 듣지 않고 촌각을 다퉈 제명했다면 당내에서조차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달 24일 국민의힘 경기도당은 “민주당이 도민과 시민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당의 정치 공세에는 관심이 없지만, 기자회견에서 나온 “꼬리 자르기에 급급했다”는 표현은 머릿속을 맴돈다.
◆ ‘분당 학폭’ 시의원 ‘출당명령’…국민의힘, 당 차원 사과 없어
지역 교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초등학교 학교폭력’ 근조 화환 시위도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자녀의 학교폭력 가해 논란에 휩싸인 성남시의원 B씨의 사퇴를 촉구하는 화환 시위는 28일 시의회 앞에서 이어졌다. 이달 23일 사건의 진앙인 성남시 분당구 한 초등학교 앞에 120여개 화환이 놓였고, 닷새 만에 50여개 화환이 시의회 앞 인도까지 점령한 것이다.
성남지역 일부 학부모를 중심으로 ‘가해 학생들에 대한 징계가 가볍다’거나 ‘가해 학생 부모인 시의원은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번에는 공수가 바뀌었다. 도마 위에 오른 건 국민의힘이다.
지역 교육계 등에 따르면 이번 논란은 가해 여학생 엄마인 B 의원이 이전 소속 정당이자 시의회 다수당인 국민의힘으로부터 ‘출당명령’을 받고 탈당한 뒤 오히려 커졌다. 해당 지역구를 관할하는 안철수 국회의원의 출당명령과 사과가 있었지만 당 차원의 사과는 아직 없다. 일각에선 당이 책임지고 진상을 파악한 뒤 함께 책임져야 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B 의원이 무소속으로 신분이 바뀐 뒤 시의회 국민의힘이 노골적으로 책임을 회피한다는 인식이 퍼졌고 화환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카페 등을 매개로 모인 분당지역 학부모들이 중심에 섰다.
앞서 국민의힘 소속 이덕수 시의회 의장은 지난 23일 민주당 성혜련 시의원 등이 학폭 대책 강화를 촉구하기 위해 신청한 5분 자유발언과 징계요구서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장은 “학폭 문제는 시정 운영과 직접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결국 시의회 민주당은 이 의장에 대한 불신임안을 의회사무국에 제출한 상태다. 아울러 기자회견 등을 통해 B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회부해 제명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시의회 앞에 놓인 화환들에는 ‘학폭 자녀 엄마는 사퇴하라’, ‘회피하지 마세요’, ‘사퇴하고 반성하라’, ‘책임은 없고, 사퇴는 더 없으신가요’ 등 B 의원을 성토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사실상 징계를 거부한 이 의장을 비판하는 글도 눈에 띈다.
시청으로 출근하던 한 공무원은 “근조 화환들이 있어 깜짝 놀랐다”며 “사후 조처만 제대로 해도 해결될 문제 아니겠냐”고 되물었다.
앞서 해당 초등학교에선 올해 4월부터 6월까지 여학생 4명이 한 학생을 상대로 공원에서 과자와 모래를 먹이고, 게임 벌칙을 이유로 몸을 짓누르거나 흉기로 위협하는 등 폭력을 가한 사건이 일어났다.
◆ 임태희 교육감 “학폭 학부모 인성 교육”…감사 결과에 관심 쏠려
관할 성남교육지원청은 심의위원회를 열어 B 의원의 딸 등 가해 학생 4명 중 2명에게 서면 사과 및 학급 교체를, 1명에겐 서면 사과와 봉사를 명령했다. 가담 정도가 덜한 1명에게는 서면 사과를 조치했다. 4명 외에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 1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조치 없음’ 처분을 받았다.
심의위 조치 결정 통보서 등에 따르면 B 의원의 딸은 피해 학생으로부터 주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지목됐다. 이후 B 의원이 해당 학교 학부모회장을 지낸 사실이 알려지면서 낮은 수위의 처분이 내려진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앞서 피해 학생은 몇 달씩 가해 학생들과 같은 학급에 방치되며 트라우마에 시달렸지만, 해당 초등학교 학폭 관련 기구는 가해 학생들에게 5일씩 출석 정지 처분만 내렸다고 한다. 안팎에서 B 의원의 영향력에 의혹을 제기하는 이유다.
B 의원은 세계일보의 전화와 문자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학폭위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분당 맘카페 등에는 피해 학생 할아버지의 얘기가 돌고 있다. “가해자들이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초등학생인 만큼) 과도한 처벌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다. 피해 학생 측은 사건이 일파만파 커진 뒤 언론 인터뷰를 피하고 있다.
이 사건은 결론을 낼 때까지 고소·고발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피해 학생 측이 B 의원의 사과에 진정성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피해자 측은 지난 17일 공개 사과문을 발표한 B 의원이 양측이 어느 정도 합의를 이룬 듯 표현한 대목에 반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범한 주부였던 B 의원은 학부모회 활동을 기반으로 서현동 110번지 주민대책위, 지하철 8호선 연장 추진위 등에서 활동했고 정치권에 몸담았다. 전형적인 시의원 진출 코스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런 B 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해 시의회 민주당 관계자는 “이율배반적”이라고 평가했다. 여성청소년 생리용품 지원조례, 노인학대 예방 및 보호조례 등 여성·청소년·어린이 등을 지원하는 조례를 집중적으로 발의한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건의 처리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교육 당국의 ‘무지’였다. 학폭 신고가 이뤄진 7월 초 직후 분리 조처를 하지 않았고, 이후 책임 회피에 연연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임태희 경기도교육감은 이달 22일 국정감사에서 “학폭 연루 시의원 자녀의 솜방망이 처벌(여부)을 감사하겠다”고 밝혔다. 취임 직후 다양한 학폭과 관련해 “부모 인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해온 임 교육감이 같은 보수정당 출신 시의원에게 어떤 사후 조처와 교육활동에 나설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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