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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는 아재 술’ 편견 깨고 싶었어요. 공주 밤으로 애주가 입맛 잡았죠”

입력 : 2024-11-05 19:21:31 수정 : 2024-11-05 19: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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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공주밤막걸리’ 생산한 사곡양조장
밤과 쌀 반반씩 넣어 빚은 ‘밤 증류주’도 최초 출시
지역 특산물 활용한 신제품 개발로 지역사회 상생 노력

“막걸리는 젊은층이 좋아하지 않는 술이라는 편견을 깨고 싶었습니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해 전통주 명맥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연령층이 즐기는 술을 만들고 싶었죠. 그렇게 국내 최초로 ‘공주밤막걸리’가 탄생했어요.”

 

임헌창 사곡양조장 대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밤막걸리’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장본인이다.

올해로 25년째 사곡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는 임헌창 대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밤막걸리’를 국내 최초로 개발한 장본인이다. 1999년 공주알밤막걸리를 출시하고 2018년에는 국내 최초로 대만 밤증류주 수출을 시작했다. 

 

올해 밤 수확이 막 끝난 1일 국내 최대 밤 생산지인 충남 공주에 위치한 사곡양조장을 찾았다. 올해는 9월 중순까지 이어진 늦더위로 밤 생산량이 예년만 못하지만 햇밤을 사용해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는 양조장은 분주했다. 

 

양조장 입구부터 막걸리 특유의 시쿰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사곡양조장은 3개 동으로 나눠 밤막걸리와 증류주, 리큐르주를 생산한다. 양조장에 들어서자 발효가 한창인 3000ℓ 발효통 6개가 눈에 들어왔다. 발효탱크마다 각각의 발효 기간과 온도가 적힌 라벨이 붙어 있었다. 뚜껑을 열자 크고 작은 기포가 터지면서 진한 술내를 뿜어냈다. 

 

막걸리 병주입이 이뤄지고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자 수백개 막걸리 병이 줄지어 벨트를 통과하고 있었다. 재료 배합부터 발효, 살균 과정을 거쳐 자체 검사를 통과한 제품들만 최종적으로 병에 주입됐다. 

 

시원한 저장소에서 막 꺼낸 막걸리병을 두어 번 흔들어 유리잔에 따르니 평소 보던 막걸리 색깔보다 노란 빛깔이 진했다.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셔보니 고소하면서도 달콤한 밤 향이 입안에서 은은하게 퍼졌다. 밤 특유의 단맛은 강하지 않았다. 

 

임 대표는 “밤막걸리는 2030 젊은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기존 쌀막걸리는 40대 이상 남성이 주 소비자였다”며 “생산 초기엔 찾는 사람이 없어 하루 10박스(750㎖, 15개) 정도밖에 생산하지 못했지만, ‘한류 열풍’이 불던 2010년엔 하루 평균 5000~8000병정도가 팔려나가며 큰 인기를 끌었다”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는 가루형태의 100% 밤가루가 사용된다. 밤막걸리 한 병(750㎖) 에는 20g 내외의 알밤 2~3개 정도 분량이 사용된다고 한다. 

 

밤 막걸리에 밤가루를 사용하는 것은 막걸리 특유의 빛깔 때문이다. 임 대표는 “막걸리는 ‘찌꺼기’를 먹는 술이다. 생밤을 쪄서 사용하면 색이 변질돼 품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전국 최대 밤 생산지인 공주 지역의 ‘공주알밤막걸리’ 상표를 갖고 있는 양조장은 사곡양조장을 포함해 4곳뿐이다.

코로나19 시기 불던 ‘홈술 열풍’이 사라지고 주류시장 경쟁이 치열해 지면서 2~3년 전보다 막걸리 생산량은 30%가량 감소했지만,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로 높은 수준이다. 나머지는 밤 증류주와 리큐르주, 오디 와인 등이 메꾸고 있다.  

 

◆ 국내 최초 밤막걸리·밤증류주 개발 “톡 쏘는 향과 맛으로 젊은층 입맛 저격”

 

현재 국내에서 밤막걸리를 생산하는 곳은 15곳이다. 이 중에서 전국 최대 밤 생산지인 공주 지역의 ‘공주알밤막걸리’ 상표를 갖고 있는 양조장은 4곳뿐이다. 지난 2017년 공주시가 ‘공주밤막걸리’에 대한 지리적상표권을 특허청에 출원하면서다. 

 

임 대표는 “양조장 인수 당시 밤을 이용해 막걸리를 빚는 곳이 전무했다”며 “막걸리 하면 ‘아재 술’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달고 고소한 공주 밤을 이용해 젊은층에게도 사랑받는 막걸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업자가 탁주에 밤을 섞는 작업을 하고 있다.

임 대표는 밤막걸리를 알리기 위해 전국의 지역축제를 찾아다니면서 소비자들에게 밤막걸리를 홍보하고 납품처를 늘리기 위해 노력했다. 밤막걸리 인기는 날로 늘었지만, 저렴한 막걸리 생산만으로는 늘어나는 인건비와 생산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임 대표는 “막걸리는 서민 술이고 그만큼 저렴하게 판매할 수밖에 없다”며 “경쟁이 치열한 데다 유통기한이 짧고 냉장보관이 필수라 지역 소비시장에서 한계를 느꼈다”고 말했다.

 

4일 통계청 주류별·지역별 제조면허 현황에 따르면, 막걸리 제조가 가능한 양조장은 전국에 1092곳이다. 이 중 70~80%가 연매출 5억원 이하로 영세하다는 게 임 대표 설명이다.

 

임 대표는 상온유통과 보관이 자유로운 증류주도 생산하고 있다. 일본 고치현 양조장에서 밤 증류주 기술을 배웠고 2년의 실험을 거쳐 2015년 국내 최초로 밤 증류주를 선보였다. 

 

임 대표는 “밤 증류주가 탄생하기까지 수십t의 술을 폐기했다. 원료 공급부터 수억원대 이르는 증류기 압력기 제작까지 수많은 난관을 겪었다”고 말했다. 

 

밤과 쌀이 50대 50으로 쓰이는 밤 증류주 생산에서 가장 까다로운 건 밤 껍데기와 알맹이를 분리하는 작업이다. 밤을 찐 다음 롤러로 압착해 알맹이만 짜내는데 밤 소주 개발 당시 국내 기술진들과 함께 알밤 1t을 처리할 수 있는 탈피기를 제작했다. 

 

주원료인 밤은 보관기술도 필요하다. 상온에 보관하면 싹이 자라 상품성이 떨어져 장기간 품질을 유지할 수 없어서다. 이를 위해 임 대표는 생산자와 협의해 술을 만들 때마다 밤을 구입한다고 한다. 

 

사곡양조장은 현재 16종 브랜드에서 20여종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임 대표는 현재까지 20여개의 특허를 획득했고, 2018년 ‘충남술 TOP10’에 선정됐다. 이곳에서 생산된 전통주는 지역 마트와 농협 등 지역은 물론 인천공항 면세점 등에서도 판매된다.

 

임 대표는 “전통주가 성장하기 위해선 새로운 소비층 확보가 절실하다. MZ세대에게 선택받는 술을 개발하는 것”이라며 “지역에서 농산물을 활용해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60년 넘게 공주에서 전통주 명맥을 이어온 사곡양조장은 지역에서 유일하게 백제문화 유네스코 세계유산 공식 체험업체로 선정된 곳이다. 이밖에도 ISO 22000인증, 농촌융복합 6차산업 인증, 충남 도지사 표창 등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사곡양조장 공주 알밤 왕밤주.

임 대표는 매년 지역 초중학교에 장학금을 기탁하고 범죄자 지원센터에 기부하는 등 다양한 지역 활동도 이어오고 있다. 향후 전통주 홍보관 및 체험장 개설을 계획하고 있다. 

 

◆“시들해진 막걸리 인기…새로운 맛, 형태로 젊은 소비층 흡수가 필수”

 

주류시장이 변하면서 2~3년 전보다 막걸리 인기는 줄어들었지만, 전통주에 대한 MZ세대들의 관심은 높다. 최근 개최된 서울국제주류&와인박람회 방문 고객 연령대를 통해서도 전통주에 대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박람회측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행사 참관객 83.6%가 20~30대다. 주류에 대한 젊은 층의 관심이 두드러졌다. 특히 올해는 전체 약 450개에 달하는 부스 중 절반 이상이 전통주 관련 부스였을 만큼 소비자뿐만 아니라 전통주 제조 업체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업계는 몇 년 전부터 변화하는 트렌드를 감지, 새로운 경험을 중시하는 젊은층 입맛을 사로잡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남도희 한국막걸리협회 사무국장은 “막걸리 업계가 지금의 불황을 타계하기 위해선 새로운 소비층의 흡수가 필요하다. 이들은 좀 더 새롭고 특색 있는 주류를 경험하길 원한다”며 “젊은 양조인들이 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역의 소규모 양조장의 경우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제품 다양성 확보, 수출 등을 통한 새로운 판로 개척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공주 = 박윤희 기자 py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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