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4일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 결정을 발표하자 이 대표 측에선 역시나 “실용주의자” 운운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금투세 유예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이언주 최고위원은 “몇 달간 지도부에서 지켜본 이 대표의 장점은 행정가 출신이라 그런지 무리하지 않는 실용주의자, 현실주의자라는 것”(4일 페이스북)이라고 했다. “1500만 주식 투자자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거나 “정부 여당이 (금투세를 가지고) 야당을 공격하는 정쟁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라 했던 이 대표의 설명을 두고 하는 말일 테다.
20대 대선을 기점으로 당의 주류가 된 이 대표가 민주·진보 진영의 ‘원칙’을 꺾을 때마다 소환된 게 ‘실용주의자 이재명’이다. 당장 4·10 총선을 두 달여 앞두고 이 대표가 범야권 위성정당 추진 방침을 밝혔을 때도 그랬다. 이 대표는 광주서 연 관련 기자회견에서 여당의 위성정당 창당이 예상되는 상황과 관련해 “칼을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순 없다”(2월5일)고 했고, 이를 두고 실용주의자로서의 면모란 평이 나왔다.
이 대표의 ‘결단’마다 따라붙는 실용주의란 개념은 사실 나름 철학사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꽤 유장한 사조다. 18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철학 전통으로서의 실용주의에 대해 범박하게 얘기해보자면 진리 개념에 ‘쓸모’를 끌어왔다고 말할 수 있을 테다. 참·거짓을 따질 때 쓸모를 그 기준으로 삼는단 건데, 여기엔 자연스레 ‘뭘 위한 쓸모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멀리 돌아왔는데, 이 대표에게 갖다 대고픈 질문이 이거다. 대체 이 대표의 실용은 뭘 위한 거냐다.
21대에 이어 22대 총선에서도 위성정당 구태를 반복해 한국 정치사의 오점을 남긴 위성정당 추진 결단은 결과적으로 민주당에 175석(민주당 161석·민주연합 14석) 압승을 가져다줬다. 2020년 12월 민주당 정부가 주도하고 여야 합의로 국회를 통과시킨 금투세에 대해 애초 이 대표는 ‘유예’ 정도 검토할 수 있단 입장이었다가 결국 폐지키로 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 대표는 “유예하거나 개선 시행하겠다고 하면 끊임없이 정쟁 수단이 될 것”이라 설명했다. 이게 2026년 지방선거·2027년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둔 발언이란 게 당 안팎에 공유된 정설이다.
이 대표의 실용이 일관되게 겨냥하고 있는 건 그의 집권일 뿐이다. 정치인이 집권을 노리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나 이 대표의 실용은 ‘집권 지상주의’의 양상이 현저하다. 금투세 폐지만 해도, 그간 윤석열정부의 세수 부족을 비판하고 ‘기본사회’ 정책 등 대규모 재정 투입을 주장하는 이 대표의 입장과 배치된다. 집권만 할 수 있다면 이런 모순은 용인된단 게 집권 지상주의의 일단이다.
흔히들 이 대표의 리스크하면 사법리스크를 말한다. 따지고 보면 사법리스크는 이 대표 개인의, 혹은 야권의 리스크로 국한된다. 국민 입장에서 볼 때, 이재명이란 유력 대권 주자의 진짜 리스크는 실용이란 포장지를 두른 채 이따금 고개를 쳐드는 집권 지상주의에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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