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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선임할게요”…목동 학원가 학폭 심의 가장 느린 이유 [뉴스+]

입력 : 2024-11-13 05:58:00 수정 : 2024-11-13 08: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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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양천 학폭 심의 지연율 100%, 평균 소요기간 9주
사교육 과열 지역 ‘강남4구’ 학폭 심의 90% 이상 지연
가해학생 변호사 선임해 대응하며 솜방망이 처벌 관행
“학폭 전담 인력 확대·학폭위원에 피해 학부모 참여”
학교폭력 관련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A군은 올해 초부터 같은 반 B군과 C군으로부터 신체·언어폭력과 금품 갈취 등의 괴롭힘을 지속적으로 당했다.

 

이들은 A군이 사는 집 주소로 배달 음식을 주문해 결제를 하게 했고 해당 음식을 자신들에게 가져오게 하는 일종의 ‘음식배달 셔틀’도 요구했다.

 

A군이 B군과 C군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가 열렸지만, 배달 음식 대리 결제 등은 학교폭력으로 보기 어렵다며 별다른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심지어 심의가 진행된 세 달간 2차 피해를 받은 A군은 결국 전학을 결심하고 학교를 떠났다.

 

학생의 학교폭력 처분을 결정하는 학폭위가 상당수 사건을 늑장 심의하면서 추가 피해가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대표 학원가 목동이 있는 강서양천이나 강남서초·강동송파 등 사교육이 과열된 지역에서 심의 지연이 더 심각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경훈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받아 12일 공개한 ‘지원청별 학폭위 심의 현황’을 보면, 올해 1학기 학폭위 심의 건수 1238건 가운데 법정 4주 이내의 심의 기간을 지킨 사건은 215건이었다. 서울에서 올 1학기에 발생한 학교폭력 사건의 83%가 교육부의 지침보다 더디게 조사된 것이다.

 

서울의 대표 학원가 목동이 있는 강서양천 교육지원청에서는 110건의 심의 중 4주 이내에 심의가 이뤄진 경우가 단 한 건도 없어 지연 비율이 무려 100%였다.

 

강동송파 교육지원청은 98%, 동작관악이 96%, 강남서초·서부 교육지원청의 심의 지연 비율은 각각 94%로 집계됐다.

 

학교폭력 피해 관련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서울시 학폭위의 평균 심의 소요 기간은 법정 기간 4주를 훌쩍 넘는 6.57주였다.

 

심의 지연 비율이 100%였던 강서양천 교육지원청은 학교폭력 건수당 평균 심의 소요 기간이 9주로, 서울시 관내 지원청 중 가장 길었다. 평균 심의 소요 기간이 4주 이내인 곳은 성동광진 교육지원청뿐이었다.

 

서울에서 학교폭력 심의 지연 비율이 높은 원인으로는 담당 인력 부족 문제가 고질적인 이유로 꼽힌다.

 

서울 기준 11개 교육지원청에는 각 7명씩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나, 규모가 큰 지원청의 경우 인력이 많이 모자란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학부모가 심의 회의의 정보공개 청구, 절차상 하자 처리 요구 등으로 시간을 끄는 경우가 많아 서울 지역의 실무 인력 1인당 4주 이내 심의 건수는 2.8건에 불과하다. 대구 22.5건의 8분의 1 수준이다.

 

강남의 한 중학교 교사는 세계일보에 “강남은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 학구열과 소득이 높다보니 학폭 문제에 굉장히 예민하다”면서 “학폭 심의 내용에 불복해 하자 처리를 요구하거나 행정심판, 행정소송으로 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최근 3년간 가해학생 선도 및 교육 등 조치 내역. 서울시교육청/황철규 시의원 제공

 

가해학생이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하는 비율도 늘면서 심의 사건 대부분에 솜방망이 처벌이 내려지는 것도 문제다.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소속 황철규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시교육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학교폭력으로 심의를 받은 가해학생 수는 1만1642명이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가장 강력한 징계인 퇴학 처분이 내려진 건 0.02%인 단 2건에 불과했다. 전학 처분은 1.1%인 132건에 그쳤다.

 

목동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폭 관련 내용이 생활기록부에 다 남기 때문에 대입에 악영향을 막고자 학부모들이 변호사를 선임해 심의위원회 단계부터 대응한다”며 “학생 1명한테 변호사가 2~3명 붙는 경우도 봤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작년 4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가 직접 발표에 나서며 근절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했지만, 학교폭력 피해를 호소하는 학생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2021년 4만4444건이던 신고 건수는 2023년 6만1445건으로 38%나 증가했다. 학폭위 심의 건수도 같은 기간 1만5653건에서 2만3579건으로 상승했다.

 

학교폭력 처분 강화와 함께 담당 인력 및 학폭위 심의위원 구성 확대 등 전반적인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경훈 시의원은 “학폭 심의가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피해자들이 겪는 어려움과 피해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학폭 건수가 계속적으로 늘어나는 교육현장의 실정에 맞춰 지원청별로 학폭위 담당 인력을 늘리는 등 특단의 대책을 세워 2차 피해가 발생하는 상황을 최대한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황철규 시의원은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상 심의위원회 위원의 3분의 1 이상을 해당 교육지원청 관할 구역 내 학교의 학부모로 위촉하게 돼 있는데, 이 중 일부에 피해학생 학부모가 심의위원으로 참여한다면 더욱 세심하고 엄격한 심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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