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지은 울산 최초 극장인 ‘상반관(常盤館)’의 사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이정학 울산과학대 전 교수는 1일 “일제강점기 울산 동구 방어진에 있었던 극장 ‘상반관’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던 중 최근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사이트에서 상방관 사진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전 교수가 공개한 사진은 고툐쇼텐(後藤商店)이 발행한 엽서에 담겨 있다. 사진 아래에는 ‘방어진 영정(榮町)’이라는 글씨가 쓰여있다. 당시 방어진 거리풍경을 담은 것이다. 엽서의 발생연도를 알 수 없어 정확한 시기를 특정할 수 없지만, 건물의 형태, 크기로 미뤄 상반관이 확장한 1937년부터 사라진 1941년 사이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 속 상방관은 아치형 지붕의 근대식 건물이다. 벽돌과 콘크리트로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2층 정면에 세로로 3개의 창이 있고, 2층 난간에는 영화 간판이 세워져 있다. 이정학 교수는 “외관으로는 3층 건물로 보이지만, 내부는 2층 구조였을 것”이라면서 “상방관의 객석은 2층까지인데, 영화관 특유의 높은 천장 때문에 외부에선 3층으로 보였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상방관은 1920년경 방어진 심상소학교와 순사주재소 사이 번화했던 상점가에 건립돼 약 20년간 운영됐다. 400석 정도 규모로, 사쿠라바상회(櫻庭商會)의 점주이자 영화 배급을 하던 사쿠라바 후지오(櫻庭藤夫)를 통해 개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관 당시 이름은 상반좌(常盤座)였고, 1925년 시설을 바꾸면서 상반관으로 이름을 바꿨다. 상반좌일때는 신발을 벗고 다다미에 앉아서 영화, 연극 등을 봤지만, 상반관으로 변경하면서 의자를 들여 현재의 극장과 비슷한 모습을 갖췄다.
이곳에선 1926년 개봉한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 1932년 개봉작 ‘임자 없는 나룻배’ 등이 상영됐다. 영화 뿐 아니라 일본 씨름단인 스모 선수들을 초청하는 등 각종 예술공연과 가정요리 강습회와 같은 강연이 열렸고, 집회·공공의 회의·토론 등 공회당 기능까지 했다고 전해진다. 1941년 화재로 건물이 모두 탔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상방관이 있던 자리엔 아파트가 들어서 있다.
이 교수는 “상방관은 지역민의 구전과 지도, 신문기사를 통해서만 알려져 있을 뿐, 건물을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를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데서 의미가 있다”면서 “일제강점기 방어진이 일본 어민의 집단 이주지역이자 울산에서 경제·문화적으로도 가장 발달한 동해안 최대 항구 도시였다는 것이다”고 말했다.
이를 보여주듯 방어진에는 울산 첫 대중목욕탕도 있다. 일본인 수산회사인 하야시카네(林兼)가 방어진에서 사업을 하면서 지은 직원 전용 목욕탕인 ‘하리마야탕(はりまや湯)’이다. 이 목욕탕은 지금도 ‘장수탕’이란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
울산지역문화연구 등에 따르면 1910년 전후로 방어진에는 일본인이 대거 이주했다. 1897년 일본인 선박이 처음 좌초돼 방어진에 도착했고, 삼치류가 잘 잡히는 걸 알게 된 후 가가와(香川)현과 오카야마(岡山)현 등에 일본인 어부가 하나둘 들어왔다. 1910년을 전후해 30가구 정도였던 방어진엔 1940년대엔 일본인만 500여가구가 살았다. 마을 한 골목엔 일본 지명을 그대로 딴 ‘히나세골목’(日生町)이라는 이름이 나붙었을 정도다. 우체국·전당포·금융조합·일본수산 출장소·여객터미널·영화관도 차례로 등장했다. 울산에서 전기도 방어진에 가장 먼저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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