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외교가에서 주(駐)프랑스 대사 자리는 엄청난 요직으로 꼽힌다. 영국 식민지이던 미국이 1776년 독립을 선언했을 때 세계 열강 중 가장 먼저 미국에 손을 내민 나라가 바로 프랑스였다. 당시 프랑스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막대한 병력을 신대륙으로 보내 영국군에 맞서 싸우도록 했다. 신생국인데다 군사력으로는 결코 강대국이라 할 수 없었던 미국이 끝내 영국을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던 배경엔 프랑스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다. 2022년 9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출범 후 첫 국빈 방문 초청을 하며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대상으로 지목했을 당시 백악관은 “프랑스는 우리의 가장 오래된 동맹국(oldest ally)”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건국 초창기 미국은 프랑스 주재 대사 인선에 엄청난 공을 들였다.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8년 초대 프랑스 대사(당시 직급은 공사)로 임명돼 1785년까지 재직한 인물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이란 점만 봐도 알 수 있다. 이후 주프랑스 대사를 지낸 인물 중에선 대통령도 두 명이나 배출됐다. 토머스 제퍼슨(1743∼1826)과 제임스 먼로(1758∼1831)가 그들이다. 그들 역시 미국 독립과 헌법 제정 등에 크게 기여했다. 미국 행정부가 세계 열강 중에서도 프랑스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제2차 세계대전 초반 프랑스는 나치 독일의 공격에 맥없이 무너졌다. 미국은 유럽 국가들 중에서 영국과 손잡고 전쟁을 치렀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와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1874∼1965)의 대서양을 뛰어넘은 우정이 유럽은 물론 전 세계를 나치즘과 파시즘, 또 군국주의로부터 살렸다. 이를 계기로 미·영 간에 이른바 ‘특수 관계’(Special Relationship)가 형성됐다. 오늘날 세계 각국에 주재하는 미국 대사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은 주영 대사라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주프랑스 대사의 지위는 주영 대사에 이은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1월30일 차기 주프랑스 대사로 부동산 개발업체 창업자 찰스 쿠슈너(70)를 지명했다. 그는 트럼프의 딸 이방카의 남편 재러드 쿠슈너의 부친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사돈을 대사 후보자로 고른 셈이다. 미국에서 주요국 대사는 정통 외교관이 아닌 대통령의 측근이나 선거운동에 거액을 기부한 백만장자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으니 찰스 쿠슈너의 발탁이 아주 이상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찰스 쿠슈너가 과거 탈세 등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교도소에서 2년간 복역한 점, 사돈인 트럼프에 의해 사면을 받았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향후 연방의회 상원의 인준 과정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인사권을 비롯해 트럼프의 거침없는 권력 행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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