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해제에도 국회 앞에서 규탄
광화문 시민단체 등 1만여명 ‘촛불’
민노총 ‘尹 퇴진’ 무기한 파업 돌입
한노총은 사회적 대화 불참 선언
편집인협회 “반헌법 尹 책임져야”
계엄령 불안에 생필품 사재기도
가족 걱정 교민들 안부전화 빗발
외국인들 “韓 여행취소” 문의 쇄도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선포했다가 6시간 만에 해제한 ‘비상계엄 충격’은 이튿날인 4일까지 이어졌다. 계엄령을 경험했던 중장년들은 불안감에 비상식량을 사들였고, 교민들은 불안한 마음에 친지의 안부를 물었다. 전날 밤부터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이날 오전 내내 진을 쳤고,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8년 만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 촛불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윤 대통령에 대해 “기본권을 유린하고 헌법을 파괴했다”며 국회에 탄핵을 촉구했다.
이날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는 비상계엄이 해제되고도 밤새 자리를 지킨 시민과 이른 아침 국회로 모인 시민 등 100여명이 “윤석열을 체포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자정부터 국회 정문 앞에서 밤을 보냈다는 김오수(58)씨는 “국회에 군인이 밀고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곧장 왔다”며 “윤 대통령이 말하는 ‘계엄 해제’를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어서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 파주에서 온 장진명(47)씨는 “군을 동원해 나라를 흔들 수 있다는 발상을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집결한 시민들은 야권이 주최한 비상시국대회가 마무리되고 오후 1시쯤에서야 해산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교민들은 한국의 계엄령 소식을 듣고 가족 안부를 확인했다. 일본 도쿄에 거주 중인 40대 김모씨는 “밤새 인터넷으로 (계엄) 관련 소식을 찾아봤다”며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연락하니 혼란스러워해 불안했다”고 말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학생 윤모(28)씨는 “심장이 쿵 떨어지는 심정이었다”며 “서울의 부모님과 통화했지만 도저히 안심되지 않았다”고 했다.
계엄이 선포된 뒤 불안감이 커지면서 시민들은 한밤에 문을 연 편의점으로 달려가 생필품을 사재기하기도 했다. 한 편의점 업체에 따르면 계엄령 선포 직후인 전날 오후 11시부터 자정까지 1시간 동안 전국 전 매장 기준 통조림 매출은 지난주 같은 요일, 같은 시간대보다 337.3% 급증했다. 봉지면은 253.8%, 생수 141.0%, 즉석밥 128.6%, 건전지 40.6%, 안전상비의약품도 39.5% 매출이 증가했다. 업체 관계자는 “현장에서는 50~60대 연령대 고객 수요가 높은 것으로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비상계엄을 경험한 1980년대 전후 세대를 중심으로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는 의미다.
한국을 여행 중인 외국인들도 갑작스러운 계엄 소식에 혼란에 빠졌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레딧 등 해외 커뮤니티에는 ‘한국 여행을 취소할까’, ‘귀국 비행기를 당장 예약해야 하느냐’는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한국행 배를 탔다는 한 여행객은 “계엄 선포에 따라 오전 2시쯤 미 국무부 대피 명령이 이뤄졌고, 오전 6시까지 (두려워) 방을 떠날 수 없었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한 호텔에서 만난 미국인 매로비치(64)는 “새벽에 뉴스에서 총을 든 군인들이 의회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라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면서 “아무래도 (한국인보다) 총을 보고 더 공포를 느끼는 것 같다. 거리에 나가 보니 평소와 다를 바 없어 안도했다”고 말했다.
이날 종로구 광화문을 비롯해 전국에선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렸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참여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등 시민사회단체와 시민 1만여명(주최 측 추산)은 영하권의 체감온도에도 광화문에 모여 ‘내란죄 윤석열 퇴진’을 외쳤다. 광주와 대구·경북, 충북·충남, 강원 등 전국 30여곳에서도 시민들의 단체행동이 이어졌다.
노동계도 이날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민주노총은 윤석열정권 퇴진을 내걸고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산하 공공운수노조도 예정대로 5일부터 파업에 나서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공운수노조 산하 전국철도노조와 서울교통공사노조, 전국교육공무직원 등이 연달아 파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정권 퇴진’을 결의하고 사회적 대화 기구 참여 거부를 선언했다.
대학가에서는 교수와 학생의 규탄 성명이 잇따랐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불의에 항거하는 4·19 민주 이념을 무참히 짓밟은 행위”라고 비판했다. 고려대 교수와 연구자, 학생도 이날 긴급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윤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것에 대한 엄정한 정치적, 사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마땅히 그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며 “헌법과 법률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법을 위반해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하고 국가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린 것은 용인될 수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종교계도 비판에 가세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입장문을 통해 이번 사태에 대해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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