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확률 천문학적으로 낮지 않아… EDR만으로 급발진 판단 무리”
“기계식 브레이크라도 ECU 결함 관계없이 작동한다고 보기 어려워”
2022년 12월 이도현(사망 당시 12세)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유가족 측과 KG모빌리티(이하 KGM·옛 쌍용자동차) 간 손해배상 소송에서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 결함으로 인해 급발진이 발생할 수 있는 차량 전문가의 증언이 나왔다.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상준 부장판사)는 10일 가족 측이 KGM을 상대로 제기한 7억6000만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 사건 여덟 번째 변론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가족 측이 신청한 증인 박정철 변호사가 증인석에 섰다. 박 변호사는 티볼리 차량에 장착된 ECU를 제조한 회사에서 5년간 근무한 ECU 시스템 엔지니어로 ECU 개발 경험과 전문 지식을 갖춘 인물이다.
국내 급발진 관련 소송에서 자동차의 주 컴퓨터이자 사람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CU) 소프트웨어에 관한 전문가의 최초 법정 증언이자, 박 변호사가 재판에서의 핵심 쟁점들에 대한 판단을 좌우할 수 있을 만큼 중요한 증인인 만큼 그를 두고 가족 측과 KGM 간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가족 측은 줄곧 ‘급발진 사고가 ECU의 결함에 의해서 발생한다’고 주장해온 만큼 이를 질문하는 데 집중했다. 박 변호사는 “ECU 소프트웨어 결함은 양산 이후에도 나타났기 때문에 급발진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며 “급발진 발생 가능성이 천문학적으로 낮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ECU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 시 사고기록장치(EDR)는 ECU가 판단한 가속페달 변위량을 받아서 그대로 표출하기 때문에 가속페달 변위량이 100%(풀 액셀)로 나오거나 브레이크 페달 OFF로 기록될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박 변호사는 “EDR 자체가 급발진을 판단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기 때문에 EDR만으로 급발진이 없었다고 판단하는 건 무리”라고 덧붙였다.
반면 KGM 측은 ECU 결함을 전제하더라도 다른 안전장치들에 의해 브레이크 오버라이드 시스템(BOS) 등 다른 안전장치에 의해서 차량 제어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피력하며 질문 공세를 펼쳤다. 또 사고가 난 2018년 티볼리 승용 차량에는 기계식 브레이크가 장착돼있으므로 ECU에 결함이 발생했더라도 브레이크만 밟았다면 감속이 돼야 했던 게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급발진 의심 사고에서 브레이크 페달이 딱딱하게 굳는 점을 언급하며 “기계식 브레이크라고 하더라도 ECU 결함이 발생했을 때 관계없이 작동한다고 말할 순 없다”고 답했다.
당시 운전자인 도현군 할머니의 ‘페달 오조작’ 여부와 연결되는 브레이크등 점등과 관련해 제조사에서 내놓은 ‘브레이크등 회로도’의 해석을 두고도 양측은 유리한 진술을 끌어내기 위해 신경전을 벌였다.
가족 측은 브레이크등을 켜는 전자식 모듈(BCM)이 ECU와 상호소통한다는 점을 피력했지만, KGM 측은 상호 소통하지 않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 변호사는 “회로도만 봐서는 판단하기 어렵다”며 “로직이 어떻게 구성돼있는지 봐야 브레이크등을 어떻게 제어하는지 알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한편 박 변호사는 증언으로 나선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진 뒤 전 직장으로부터 압력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회사 관계자가 ‘증언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해서 추궁하기도 하고, 회사 관계자들로부터 저에 대해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도 들었다”며 “증인출석을 취소할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엔지니어 출신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출석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내년 1월7일 변론기일을 한 차례 더 열고 심리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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