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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모의’ 수첩 발견된 ‘비선’ 노상원 점집 가보니…“건물주 보살 일 도와” [밀착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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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2-24 14:16:51 수정 : 2024-12-24 14: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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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전 10시쯤 경기 안산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 1층. 입구로 들어서자 보이는 집 현관문엔 점집을 뜻하는 ‘만(卍)’자가 쓰여 있었다. 문엔 ‘안산시 모범 무속인 보존위원’이라고 써 붙어 있기도 했다. 문 앞 선반 위엔 말린 북어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 제사상에 오르는 잡채 소량이 마른 채 접시에 담겼다. 오랜 시간 방치된 것으로 보이는 붉은 찌개가 가득 담긴 냄비와 화분 등도 놓였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사전에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24일 서울 은평구 서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뉴스1

이젠 굳게 닫힌 이곳은 ‘12∙3 계엄’ 사태를 모의한 ‘비선’ 핵심 노상원 전 사령관이 지낸 거주지이자, 점집이다. 육군사관학교 41기인 노 전 사령관은 2018년 성추행 의혹으로 불명예 전역한 뒤 이듬해 무렵부터 이곳에서 한 여성 무속인 ‘아기보살’의 점집 운영을 거들었다. 인근에서 만난 이웃 주민들은 “손님 3∼4명이 줄을 설 정도로 인기가 적지 않았다”며 “몇 년 전부터 남자 1명이 함께 지내며 여자 보살의 일을 도왔는데, 이번 계엄을 모의한 군인 출신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점집의 위치는 노 전 사령관이 문상호 정보사령관 등 정보사 전∙현직 간부들과 계엄을 모의한 일명 ‘햄버거 회동’을 가진 곳과 멀지 않다. 이들이 모인 롯데리아 안산상록수점과 1.4㎞ 거리로, 도보로 20분 떨어져 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 1일과 계엄 당일인 3일 별도의 수사단 구성을 모색하는 등 계엄 전후의 구체적 단계를 계획했는데, 점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후배들을 호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 1층에 위치한 노 전 사령관이 함께 운영했던 곳으로 지목된 점집의 모습. 장한서 기자

이날 기자가 찾은 점집은 음산한 기운만 감싼 채 인적이 끊겼다. 점집을 운영한 아기보살인 A씨는 사태 이후 자취를 감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주 등을 보기 위해 손님들이 드나들곤 했으나, 계엄 사태 이후 사라진 것이다. 현관문 앞엔 ‘아기보살’과 연관된 아기 젖병, 장난감 자동차 등이 즐비했다. 무당들은 ‘신 내림’을 하면, 그 신처럼 행동하는 데 A씨가 이 소품들을 활용한 것으로 관측된다. 술과 향초, 향 통도 발견됐다. 우편함엔 A씨 앞에 고지된 카드 및 과태료 통지서가 쌓여 있었다. 당초 건물 외벽에도 ‘아기보살’이라 쓰인 간판이 붙어있었지만, 지금은 떼진 상태다.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 1층에 위치한 노 전 사령관이 함께 운영했던 곳으로 지목된 점집의 모습. 장한서 기자

이 다세대 주택에서 거주 중인 한 주민은 “오고 가며 그 남자(노 전 사령관)와 인사를 주고받기는 했지만, 특별한 대화를 나누진 않았다”며 “점집을 찾는 손님이 3∼4명씩 줄을 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주민은 이어 “아기 보살이 여기 다세대 주택의 건물주다. 반지하와 2∼3층에 일부 집도 직접 본인이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이웃 주민은 “점집에 지내는 남녀가 함께 차를 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점집에선 계엄 전모를 밝힐 수 있는 ‘스모킹 건’,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이 발견됐다. 경찰이 밝힌 수첩 속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전날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수첩엔 ‘북풍’ 공작을 기도한 정황이 포착됐다. ‘국회 봉쇄’라는 단어도 나왔고, 정치인과 언론인, 종교인 등은 ‘수거 대상’으로 지칭한 것으로 파악됐다. ‘사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지난 20일 경기 안산시 상록구의 한 다세대 주택 반지하 1층에 위치한 노 전 사령관이 함께 운영했던 곳으로 지목된 점집의 모습. 뉴스1

한편, 경찰 조사를 받던 노 전 사령관은 이날 내란실행 및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에 구속 송치됐다. 노 전 사령관은 호송차로 이동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비상계엄에 대해 직접 소통했느냐’, ‘수첩에 누구를 사살하라고 썼느냐’, ‘북한 공격은 어떻게 유도하려고 했느냐’ 등의 취재진 질의에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안산=글∙사진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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