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보고서 “로컬라이저까지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개선 필요”
문제 알고도 둔덕 더 단단하게 해
이탈 위험 최소화 ‘정지로’도 없어
관리 부실·안전 불감 맞물려
철새도래지 4곳 둘러싼 공항 입지
조류 충돌 예방 인력은 4명 불과
활주로 연장사업 지연도 화 키워
제주항공기 사고 뒤 닷새 만인 2일 경찰이 무안국제공항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돌입하면서 이번 사고 원인이 공항 시설기준 미비 등에 따른 ‘인재(人災)’로 귀결될지 관심이 쏠린다. 이미 참사를 키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 콘크리트 기반 둔덕 형태의 로컬라이저(LLZ·방위각제공시설)는 관련 규정 위반으로 주장이 끊이질 않고 있고 이외의 다른 시설물과 사고 예방을 위한 조치도 미흡한 것으로 확인되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항공 안전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과 관련 규정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일 국내외 항공 전문가들은 지난달 29일 벌어진 제주항공기 비상착륙이 참사로 발전한 주원인으로 LLZ 설치된 콘크리트 둔덕을 지목해왔다. 총비행 시간 6820시간에 달하는 베테랑 조종사가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 뒤 어려운 여건에서 랜딩기어(착륙용 바퀴) 없이 동체착륙에 성공했지만 단단한 콘크리트 둔덕에 충돌하며 사고가 확대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특히 이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 위반이라는 주장이 제기되며 이번 참사가 인재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공항시설법 ‘항공장애물 관리 세부 지침’에 제23조 3항에 따르면 공항 부지에 있고 장애물로 간주되는 모든 장비나 설치물은 부러지기 쉬운 받침대에 장착해야 한다. 평시엔 구조적 통합성과 견고성을 유지하다가도 이번과 같은 오버런(활주로 이탈) 발생 시 항공기의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쉽게 부서져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국토부가 2015년 진행한 ‘무안국제공항 활성화를 위한 공항시설 개선방안 연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정밀접근활주로의 경우에는 LLZ가 설치되는 지점까지 활주로 종단안전구역을 연장하여야 한다’며 콘크리트 둔덕 개선 필요성을 언급한다. 하지만 공항 당국은 종단안전구역 연장도 하지 않았고 지난해 개량공사에서 둔덕에 콘크리트 상판까지 추가로 얹었다.
이날 국토교통부는 브리핑에서 “한국공항공사 (개량공사) 발주 취지 문의해봤다”며 “둔덕 위의 레일 등 기초재 개량 설계를 부러지기 쉽도록 고려하라는 취지였다는 의견을 제시받았다”고 해명했다.
황호원 한국항공대 교수(항공교통물류학)는 “로컬라이저는 부러지기 쉬운 재질로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 규정에 나와 있다. 무안공항의 경우는 명백한 규정 위반”이라며 “항공 규정의 중요성을 간과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지적했다.
항공기가 이륙 등의 과정에서 제대로 활공하지 못하고 활주로에서 이탈한 경우에 위험을 최소화하려 만드는 정지구역(정지로)도 무안공항에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무안공항에 정지로 개념으로 만든 건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무안공항이 활주로 보호구역을 충분히 확보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활주로 보호구역은 활주로 종단으로부터 60m 지점에서 시작해 규정된 수치까지 확장한 구역이다. 이 구역에서는 항공기 안전을 위해 조류를 유인하는 곡식류의 경작 및 조림 등의 토지이용이 제한된다.
예산 및 문화재 발굴 등의 문제로 2년 이상 지연되고 있는 무안공항 활주로 연장사업도 사고를 키웠다는 의견도 나온다. 가뜩이나 짧은 활주로(2800m)가 연장사업 탓에 2500m만 사용 가능해 제동거리가 현격히 줄었다는 것이다. 활주로 연장 사업(3160m)은 늦어도 내년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버드 스트라이크가 잦을 수밖에 없는 공항 입지 선정도 문제로 꼽힌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 등에 따르면 무안공항은 반경 13㎞ 이내에 4곳의 주요 철새도래지가 있다. 이 중 가장 큰 곳은 무안공항 북쪽에 위치한 113.34㎢ 규모의 무안갯벌습지보호구역이다.
한국공항공사에 따르면 2019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최근 6년간 자사가 운영 중인 전국 14개 지방 공항의 조류 충돌 건수는 총 559건이었다. 공항별로는 김해공항이 147건으로 가장 많고 무안공항은 10건에 그쳤지만, 운항 편수(1만1004편) 대비 발생률은 0.09%로 가장 높았다.
이러한 환경에도 조류 충돌 예방을 위한 무안공항의 대응이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2024년도 하반기 무안공항 조류충돌예방위원회 개최 결과’ 문건에 따르면 조류 퇴치 업무 담당인 한국공항공사 자회사 측 참석자는 “최대한 퇴치 활동을 위해 노력하지만, 공항 내외부 전체를 이동하기에는 인력과 차량이 부족하고 해변 등 원거리까지 확성기 소리가 미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조류 충돌 예방 인력은 4명에 불과했으며 사고 당일에는 2명만 근무한 것으로 드러났다.
권보헌 극동대 교수(항공안전관리학)는 “‘항공의 역사는 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듯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대대적인 공항 안전 점검을 시행해 또 다른 참사를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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