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해독 길면 6개월?… “미국 가면 번호표 뽑고 기다려야” [뉴스+]

제주항공 FDR, 커넥터 등 없어 국내선 해독 못해
미국 NTSB 전 세계서 항공사고 관련 독립 조사
美정부 입김도 안 통해…데이터 추출 수주 소요

전남 무안국제공항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열쇠 역할을 할 블랙박스에는 비행기록장치(FDR)과 음성기록장치(CVR)가 있다. 불과 이틀 만에 자료 추출을 마친 CVR과 달리, FDR의 데이터를 수집하려면 최소 1개월에서 길면 6개월 이상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랙박스 해독에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3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군·경찰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3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CVR에서 자료를 추출한 뒤 전날 오전 음성파일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을 마쳤다. 당초 파일 전환 작업 등에 2∼3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소요시간은 1.5일 정도였다.

FDR은 일부 부품 파손 탓에 결국 미국으로 이송돼 분석을 거치기로 했다. 사고 현장에서 수거된 FDR은 데이터가 저장된 원통형 본체는 외관상 거의 파손이 크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본체와 연결된 커넥터가 분실된 상태다.

국내에서 다른 커넥터를 구하는 방법도 있지만 사조위는 이번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해 미국에 의뢰하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대체품을 확보하더라도 연결 과정에서 데이터 추출을 하는 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커넥터가 정상 작동되더라도 FDR이 손상됐다면 국내에서 해독이 불가능한 만큼 신속히 미국과 협의에 나선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대체품을 만들어서 끼우는 것도 간단한 작업이 아니고, 함부로 개봉하면 데이터 보존에 여러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있었다”며 “미국이 단독으로 분석하는 게 아니라 우리 전문가가 같이 가서 공동 작업을 한다”고 설명했다.

커넥터가 없으면 데이터 확인은 물론, 전원 공급도 되지 않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FDR의 내부 손상 정도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FDR 해독에는 최소 1개월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30일 무안 사고현장에서 수거한 음성기록장치(CVR). 국토교통부 제공

FDR이 보내지는 곳은 미국 워싱턴D.C의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다. NTSB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국의 전 세계의 항공 사고들을 관장하고 있다. 정치적 영향은 물론, 항공사나 제조사의 입김이 닿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1974년 미 연방교통부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기관으로 분리됐다.

국내 항공사 관계자는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유럽 합작 제조사인 에어버스를 제외하면 글로벌 5위권의 항공기 제조사는 모두 미국이고, 경비행기나 헬기 등 소형 기체까지 합치면 미국 점유율이 압도적”이라며 “NTSB가 이미 전 세계의 크고 작은 항공사고와 관련한 조사 협조를 받아서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우리나라도 번호표를 뽑고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나 의회도 NTSB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분위기라 이번 사고만 먼저 분석해달라고 요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TSB가 FDR 분석에 착수한 이후에는 파손 정도가 관건이다.

파손이 심할 경우 복구 전문 인력이 전문 장비와 프로그램을 통해 데이터를 복원해야 한다. 복원한 데이터는 다양한 비행 자료와 동기화 등을 거쳐 정상적으로 추출되는지 확인 과정 등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NTSB가 FDR 복원에 성공하더라도 실제 데이터를 확보하려면 수일에서 수주일 이상 걸릴 수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