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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호의미술여행] 시대의 목표를 담아낸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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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06 23:07:25 수정 : 2025-03-06 2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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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레네산맥의 깊숙한 동굴에서 발견된 벽화이다. 날카로운 도구로 바위에 새긴 암각화인데, 기원전 1만2000년에서 기원전 1만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구석기 시대가 기원전 3만5000년경에서 기원전 1만년 경까지라고 한다면, 구석기 시대 후기쯤에 해당한다.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불구하고 사실감이 여전하다. 날카롭게 뻗은 순록의 뿔과 입을 벌린 채 뒤돌아보는 모습과 겁먹은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순록 두 마리의 경쾌한 발걸음이 보일 듯이 다리들이 묘사됐고, 물고기의 옆모습과 머리 부분을 감안할 때 연어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에 뛰어난 관찰력과 사실적인 묘사 능력이 바탕이 됐다.

‘순록과 연어’ 동굴 벽화(기원전 1만2000∼1만년경)

왜 이 작품은 사람들의 왕래가 잦지 않은 산속 동굴에서 발견되는 것일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순수 미술 혹은 감상을 위한 작품으로 만들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술사에서는 이것이 주술적 기능을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설명한다. 원시인들이 위협적인 야수로부터 보호받기 위해서 또 그들이 원하는 동물이 잘 잡히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렸다는 것이다.

그러면 산짐승인 순록과 연어 같은 물고기를 같은 공간에 그려 넣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장면도 이해가 간다. 순록도 잡고 싶고 연어도 잡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순록의 머리 위에 다이아몬드 형태들을 그려서 잡고 싶은 숫자도 기록했을 것 같다.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이 작품의 사실적 묘사를 감안할 때 원시 시대 미술가들의 묘사 능력이 떨어졌다는 말이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적인 묘사 수준을 근거로 미술 양식의 발달을 설명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시대마다 이미지에 요구되는 목적과 기능이 있었고, 거기에 맞게 미술 작품의 창작이 발전해 왔다는 것이다.

역사의 시기마다 주어지는 역할과 목표가 있다는 건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게 무얼까?


박일호 이화여대 명예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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