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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애들이 뭘 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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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06 23:08:00 수정 : 2025-03-06 23:0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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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그랬다. 거리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호소하는 10대들의 앳된 얼굴을 보면 어쩐지 삐딱한 마음이 일었다. ‘애들이 뭘 제대로 알고 저러나’ 하고 말이다.

얼마 전 청소년 10인이 포스코 광양제철소 제2고로 개수(설비 교체)에 대해 탄소배출량 감축 의무 외면이자 미래세대의 환경권·생명권 침해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를 쓰고 나서였다. 소송을 지원하는 기후솔루션 측에서 연락이 와 “기사에 아이들을 향한 악성 댓글이 달리고 있다”며 댓글창 비공개를 요청했다. 댓글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저기 세운 게 누구냐’, ‘너네가 나중에 크면 여기 박제된 걸 후회할 거다’ 등 모진 말들이 그득했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소장에 이름을 올린 김정원(19)양에게 물었더니 “자주 겪는 일”이라며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어이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부터 경북 포항에서 ‘그린핑거스’라는 기후·환경 동아리 활동을 해왔다. 언젠가는 포항 영일대에서 의류 소비에 대한 경각심을 제고하고자 플리마켓(벼룩시장) 행사를 열었는데 “애들 내세워서 이런 거 시킨 게 누구냐”고 으름장을 놓는 어른도 있었다고 했다. 교회·학교에서 안 쓰는 옷 300㎏ 정도를 직접 수거하고 창고를 빌려 분류하고 세탁까지 하며 애를 쓴 김양과 친구들은 “우리가 살아가야 할 환경에 대한 권리를 말하는 건데 그게 무슨 문제냐”, “어른들이 오히려 우릴 응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분을 삭였지만 한동안 사기가 꺾이기도 했단다.

김양은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우린 많은 걸 보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른 세대”라며 “우리 생각은 우리 건데, 많은 분들이 그걸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퍅한 시선에 대해 많이 고민한 흔적이 느껴졌다.

그런데도 어쩐지 머릿속 한편에선 좀스러운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게 모두 좋은 대학 가려고 스펙 쌓으려고 한 일은 아닌가요?”

올해 고교를 졸업한 김양은 올 9월 해외 대학 입학을 앞둔 터였다. 그는 “그린핑거스 친구들 중 입시 때문에 활동을 시작한 경우가 실제 많다. 우리나라 고교 생활을 생각하면 그건 당연한 것”이라며 “뭐가 됐든 간에 그런 동기에라도 기후·환경에 관심을 갖고 행동했다는 것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질문을 밥 먹듯 하게 되는데, 종종 돌아오는 답에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가 있다. 김양의 대답을 들었을 때가 그랬다. 그는 “한 번 알게 된 이상 행동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도 했다.

기후·환경을 말하는 목소리는 불편하다. 나 역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어린 친구들에게서 도덕적 열등감을 느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들의 동기를 트집 잡아 감정을 해소하고자 했던 건가 싶기도 하다.

김양은 대학에서 공공정책학을 전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포항시에 탄소중립 계획 수립을 촉구하고 재생에너지 관련 정책제안서도 만들어 낸 적 있다는 그는 전공 결정에 대해 “정책적으로 뒷받침돼야 기후행동이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른들의 못난 생각이 이 친구에게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는 듯해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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