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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영원한 삶을 택한 순국,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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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5-03-24 23:23:37 수정 : 2025-03-24 23: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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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은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년이 되는 날이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26일 우리 민족의 숙적으로 일본제국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중국의 하얼빈 역두에서 척살하였다. 안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되어 일본 관동도독부의 여순감옥에 수감되고 여순관동법원에서 6차의 공판으로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고 3월 26일 사형집행을 통해 순국하였다.

박귀언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상임이사

안중근 의사는 사형집행의 순간 마지막으로 할 말을 묻는 집행인에게 다 같이 동양평화 만세를 부르자고 제안했다. 그에게 동양평화는 조국의 자주독립을 담보하는 시대정신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는 안응칠 역사와 동양평화론 등 유고집을 통하여 한결같이 동양평화의 전제가 없이는 대한제국의 완전한 자주독립은 보장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세기를 넘어서는 시기에 펼친 동양평화론을 비롯한 그의 주장들은 오늘날에도 선각자적 혜안으로 인정받고 있다.

 

안 의사는 죽는 순간에도 오로지 조국의 독립을 보장하는 동양평화를 염원하며 국권 상실의 위기 상황 극복을 위해 온몸으로 실천하여 유묵으로 남긴 見利思義 見危受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 앞에서는 옳은지 생각하고 위기를 당하여는 목숨을 줘야 한다)의 수범이 되었다.

 

안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으며 일제의 압박을 받고 있던 중국과 한국에는 쾌거로 칭송되었다. 안 의사의 빛나는 의거에 대한 뜻은 세월이 갈수록 더욱 넓게 이해되고 선양되고 있으나 의거 이후 순국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여준 안 의사의 옥중투쟁과 법정투쟁을 통한 완전한 승리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의 폭이 깊지 못한 점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순국 일에 즈음하여 추모의 맘으로 공유의 폭을 넓히고자 한다.

 

안 의사는 법정투쟁과 옥중생활을 통해 자신을 감시하고 격멸하던 일본 제국주의 추종자인 적들에게 고매한 인품과 불굴의 정신을 보여 존경과 숭배의 대상이 된다. 그가 남긴 200여폭의 유묵은 이를 입증하는 충분한 자료로서 대부분 일본인이 사형 전에 지필묵을 넣어 받은 글들이다. 안 의사를 대했던 현지의 일본인 고위층들은 안 의사의 유묵 하나 간직하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며 다투어 글을 받았던 것이다.

 

특히, 법정투쟁을 통하여 이토 히로부미로 대표되는 일본제국주의의 죄상을 낱낱이 밝혀 영국의 더 그래픽지 등 선진 각국 언론에 보도됨으로써 한국인의 억울한 사정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대한제국의 확고한 자주독립 의지를 천명하여 고종황제께서 밀사를 통해 헤이그만국평화회의에서 이루고자 했던 뜻을 완성시키는 성과를 이루었다. 이는 의거와 함께 옥중과 법정투쟁의 승리이며 영원히 계승되어야 할 안중근 정신이라 할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와 대적하여 싸우고 일본 근대화의 상징 이토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지성인들로부터도 존경과 숭배를 받는다. 그의 순국 추도식에는 언제나 상당수 일본인이 현해탄을 건너와 숙연한 맘으로 참여하고 추모한다.

 

죽음으로 의를 지키고 평화를 구현하려 했던 안 의사의 정신은 우리 민족은 물론 동양과 세계인류의 가슴속에 영원한 교훈으로 살아 숨 쉬고 있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5주년을 맞는 우리는 合成散敗 萬古定理(합성산패 만고정리, 화합하면 이루고 흩어지면 패한다 이는 만고의 정한 이치이다)를 외쳤던 의사의 뜻이 오늘날 분열로 치닫는 우리의 교훈으로 되살아나 단합된 민족으로 번영을 향해 함께 전진을 다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박귀언 여순순국선열기념재단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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