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안 문제 대응·인태 안보 핵심역할 전망
트럼프 2기 맞서 실리 챙길 전략 활용을
조선·항공 MRO 참여… 방위비 문제 풀어야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등장을 ‘위기’로만 인식하지 말고 상호 긴밀한 협의와 협조를 통해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의 중요성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한·미동맹에 균열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지만 김병관(76) 한미안보연구회(COKUSS) 회장은 ‘결국 한국이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면 되레 한·미 관계가 더욱 공고해지고 미국 내 한국의 위상도 한층 높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당장 미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김 회장은 우리 정부를 향해 “양보할 것은 양보하면서 실리를 취하는 외교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1984년 한·미동맹과 한국의 안보를 연구할 목적으로 설립된 한미안보연구회는 매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안보 관련 학술회의, 전문가 초청 정책 간담회 등을 열고 있다. 육군사관학교 28기생인 김 회장은 입학과 졸업을 모두 수석으로 한 흔치 않은 기록의 보유자다. 1972년 소위 임관 후 2사단장, 7군단장, 1군사령관(현 지상작전사령관)을 거쳐 2006∼2008년 한미연합군사령부(CFC) 부사령관까지 지낸 예비역 대장이다. 지난 3일 김 회장과 만나 트럼프 시대의 한·미동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앞날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미국의 마음을 붙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보수적 가치와 경제 회복, 군사력 강화, 불법 이민 단속 등 미국 우선주의 외교에 중점을 둔다. 전통적인 외교 관례나 국제협력 원칙에서 벗어나 현실적 이익을 선호한다. 특히 미군이 주둔하는 동맹국의 방위비 인상을 공개적으로 강조한다. 경기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이 가진 세계 최대의 해외 군사기지다. 서울 여의도의 3배 남짓한 면적에 최신 첨단 시설이 구축돼 있다. 중국의 위협에 맞서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문제를 해결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지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런 캠프 험프리스의 가치를 미국 측에 적극 강조할 필요가 있다. 방위비 협상이 자칫 감정 대립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치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선 한국 조선업의 역량이 한·미동맹 혁신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여긴다.
“미국은 조선소가 부족해 신규 함정 건조는 물론 보유 함정 수리도 모두 지연되며 작전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그 때문에 함정 정비를 위해 타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정비 능력이나 가성비 면에서 한국이 적격이므로 트럼프 대통령이 조선 분야의 MRO(유지·보수·정비) 사업을 언급하는 것이다. 미국은 함정은 물론 항공기 MRO에도 한국이 적극 참여하길 원한다. 이는 향후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도 연계가 가능한 부분이다.”

―안보 불안이 커지며 보수는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핵무기 얘기가 나왔다. 자체 핵무장이 어렵다면 ‘핵 잠재력’이라도 확보하자고 하는데.
“핵 잠재력이란 핵무기를 실제로 만들지는 않되 유사시 단기간에 핵무기를 제조해 실전에 배치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는 한국도 가입한 핵확산금지조약(NPT)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본처럼 핵무기를 신속하게 개발할 수 있는 완전한 기술력을 갖춘 국가라는 의미에서 ‘일본 옵션’으로도 불린다. 다만 한국이 핵 잠재력을 갖추기 위해선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시설 확보가 필수인데 이는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해야만 가능하다. 결국 핵 잠재력 확보는 미국의 동의 아래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종종 북한을 “핵무장국”(nuclear power)이라고 부른다. 그럴 때마다 국내에선 ‘미국이 북한을 사실상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한다. 물론 백악관의 공식 입장은 여전히 ‘북한 비핵화’다. 김 회장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점점 고도화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라는 구호는 약간 공허하게 들리는 게 사실”이라며 “북한의 핵 위협을 고려해 우리도 단계적으로 핵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의 정치 리더십이 불확실한데 한·미·일 3국 군사 협력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과 중국의 위협을 고려하면 3국 군사 협력은 필수적이다. 한반도 유사시 일본이 유엔군사령부(UNC) 후방 기지 역할을 맡는 점을 감안하면 한·일 양국의 군사 협력도 매우 중요하다. 국내에 과거사를 들어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려는 집단이 있는 게 사실이다. 물론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미래지향적으로 더 나은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 한·일, 나아가 한·미·일 모두의 국익과 한반도 안보에 도움이 될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중국이 한국을 종전처럼 쉽게 상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냥 “셰셰”(謝謝·고맙다)만 해서는 안 된다. 최근 중국이 서해 잠정조치수역(PMZ)에 무단으로 구조물을 설치했는데, 우리 정부가 강하게 어필(항의)해야 할 사안이다. 다만 양안 문제에 관해선 관망하면서 신중할 필요가 있다. 섣불리 앞서나가선 안 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협상을 통해 끝날 가능성이 엿보인다. 전후 한국·러시아 관계는 어떻게 보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러시아와의 경제 협력을 염두에 두고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는 서쪽, 즉 유럽으로는 경제·외교 등이 막혀 있다. 러시아는 동쪽, 곧 아시아에서 돌파구가 필요한데 이때 한국과의 경제적 협조는 필수적일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그간 중단되었던 한국과 러시아의 경제 협력이 활성화할 것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은 3년 넘게 지속되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하지만 침략자 러시아가 그동안 빼앗은 우크라이나 땅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는 것을 승인하는 식의 종전 협상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물론 국제사회의 거부감이 크다. 김 회장은 “각국의 이해관계가 복잡해 종전 협상이 쉽지 않아 보인다”며 “양국의 충돌 방지를 위한 완충지대 설정 등 휴전 협정부터 맺고 단계적으로 종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미국으로부터 ‘전쟁을 그만두라’는 강요를 받는 우크라이나의 모습은 6·25전쟁 막판인 1953년 미국의 휴전 압박에 직면한 한국의 처지와 비슷해 보인다. 한국은 이를 수용하되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는 형태로 안전 보장을 얻어냈다. 한·미동맹을 이뤄낸 이승만 대통령의 지략을 평가한다면.
“이 대통령은 세계 최빈국 지도자였지만 외교의 귀재였다. 휴전 반대와 북진 통일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약점’을 이용하고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성사시켰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반공포로 2만7000여명의 석방이었다. 이는 어떻게 해서든 전쟁을 끝내기 위해 공산권에 양보하려던 미 행정부로 하여금 한국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만든 ‘신의 한 수’였다.”

―평소 ‘손자병법’을 애독하고 각종 강연 때에도 많이 인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무기 체계도, 작전 개념도 확연히 달라진 오늘날 손자병법의 가치는 무엇인가.
“나는 어릴 때부터 군인이 되기로 마음을 먹고 손자병법을 즐겨 읽었다. 육사 진학 후 전쟁사 시간에 손자병법을 배웠고 장교로 임관한 뒤에도 수시로 꺼내서 봤다. 한마디로 시대를 넘어선 전쟁과 전투의 진수라고 하겠다. 꼭 군사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과 활용이 가능해 수많은 명장은 물론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애독서로 꼽는다. 심지어 트럼프 대통령도 읽었다고 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100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知彼知己百戰不殆·지피지기백전불태)라는 교훈,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不戰勝·부전승)이 최고의 전략’이라는 가르침은 국제정세를 분석하고 무엇보다 한반도 안보를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안보를 떠나 인생 성공을 위한 필수 교재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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