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탄핵심판 과정 사회 갈등 심화
진영간 극단적 비난이 균열 부추겨
尹, 협치의 대상으로 국회 바라보고
야당, 관용 전제 대화 노력했어야”
“조기대선, 갈등 국면 전환할 기회
양대 정당 ‘어깃장 정치’ 그만하고
자제력 바탕 여당·야당 소통 늘려
이전과 다른 수권 능력 보여줘야”
대통령 선거는 시대정신을 함축한다. 국민의 선택을 받은 후보자가 어떤 가치를 내세웠는지 살펴봄으로써 국민이 바라는 시대적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엿볼 수 있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균형발전’을 내걸어 당선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각각 17·18대 대선에서 승리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었다.
6월3일 열리는 21대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이 될까. 세계일보가 9일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 전문가 20명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통합’이 우선순위로 꼽혔다.

국민이 체감하는 대한민국의 갈등은 최악 수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달 발간한 ‘2024년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갈등 정도는 역대 최고치인 3.04점(4점 만점)을 기록했다. 2018년 조사 시작 이래 처음으로 ‘보통’(3.0점)을 넘어 ‘매우 심하다’(4.0점)로 향했다. 차기 대통령은 극한으로 치닫는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국민을 화합시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국민 분열 원인 제공한 정치권
전문가들은 작금의 사회갈등에 있어 정치권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지적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정치권의 진영 간 갈등 구도가 광장으로 옮겨와 국민의 분열과 대결 구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정치권이 각자의 진영이 주최하는 집회에 참석해 상대진영을 향한 극단적 발언을 내뱉는 등 광장의 분열을 해소하기보다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탄핵 국면마다 정치적 균열이 심해지곤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탄핵소추안이 통과하자 여야 의원들이 같이 소주 한 잔 먹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 때는 정치적 양극화가 사회적 양극화로 전이돼서 사회적 양분화가 극단적으로 발생했다”며 “이번엔 균열 구조가 더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국민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치권이 ‘협치’를 이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며 “국회의 소수당은 다수당 입장의 뜻이 국민 다수의 뜻이라는 점을 존중해야 하고, 다수당은 소수당 목소리를 경청하는 정치적 역량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도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에서 존중을 강조한 바 있다. 헌재는 윤 전 대통령을 향해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존중했어야 했다”고, 더불어민주당에는 “관용과 자제를 전제로 한 대화와 타협을 노력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치권이 극단적 대립을 멈추고 협치를 이뤄야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이 재발하지 않고 국민의 정치적 양극화도 완화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 교수는 “대통령이 군을 동원해 비상계엄하고, 야당은 다수 의석으로 줄탄핵을 하면서 소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는데, 대통령제 국가에서 보여주는 가장 안 좋은 형태”라고 비판했다. 그는 “당내에서 자제력을 보여주지 않으면 진영 간, 정당 간 갈등이 이어지고 국민 통합을 이루기 쉽지 않다”며 “국민이 뽑은 대통령과 국민이 뽑은 국회가 충돌하면 해법은 결국 리더십과 정치력, 자제력밖에 없다”고 했다.
◆조기대선, ‘국민 통합’ 기회로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대선 레이스가 시작된 지금이 국면을 전환할 기회라고 진단했다.
이병훈 교수는 “이제 정치권의 갈등구도가 광장에서 선거 중심으로 전환된다”며 “정치권은 이 나라를 하나의 위기로 몰아넣는 정치대결을 넘어 서서 선거에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사회통합에 같이 매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12·3 계엄을 계기로 엄청난 국론 분열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갈라져 싸우면서 상처를 받았는데, 이러한 갈등을 추스르는 시간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조기 대선에서 대타협 선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양대 정당이 서로 어깃장 놓고 발목 잡는 정치는 이제 그만하고, 협치를 통해 경제 위기를 풀어나가고 제도를 고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관세 전쟁 대처와 일자리 창출 등 경제 위기 극복 능력이 필요한 시점인 만큼, 조기 대선에서는 경제 위기 대처와 민생 회복 노력을 기울여 나가는 게 필요하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민주당을 향해서는 윤 정부 시기 보였던 ‘일방처리’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조진만 교수는 “60일간 신중하고 자제력 있게 수권 능력을 보여주는 게 민주당의 과제”라고 말했다. 그는 “조기 대선에서 중도층이 중요한 역할을 할 텐데, 민주당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중도에 있는 사람들이 호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으로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과거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중도층도 투표에 참여하게 되면서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도 윤석열정부와 같은 모습이 될 것처럼 보이면 대통령만 바뀔 뿐 한국 정치 양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회의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보수진영을 향해서는 “참보수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나왔다. 차재원 부산가톨릭대 특임교수는 “보수의 가치가 헌법수호인데, 보수정당이 배출한 윤 전 대통령은 헌법수호 책무 위반한 사유로 파면됐다”며 “보수의 실패, 보수의 궤멸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보수의 참가치를 찾는 계기를 만들어야 이 혼란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의힘이 승복하겠다고 했으니 헌법을 수호하는 방향으로 당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극단적 세력에 동조하는 후보를 낼 수 없다는 정치적 선언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