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前대통령 백신접종에 의혹 제기
정치인·의학, 관련 없는 두개 영역 연결
‘우리가 그들에게 위협받는다’ 구조 형성
가짜뉴스가 모이면 음모론 발전 가능
불확실한 상황에서 확대·재생산 쉬워
“정보의 진위 구분은 결국 개인의 몫” 상>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부정선거론이 확산하면서 ‘음모론’이란 용어가 여러 매체에서 자주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이 용어가 ‘허위조작정보’와 혼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두 개념은 흔히 함께 언급되지만, 그 성격과 구조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둘러싼 사례는 그 차이점이 명확하다. “코로나19 백신에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다”, “백신이 DNA를 변형시킨다”와 같은 개별 허위조작정보들이 모여 “빌 게이츠, 세계보건기구(WHO), 세계 정부들이 인구 감소와 인류 통제를 위해 협력하여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백신을 통해 사람들을 감시하려는 계획을 진행 중”이라는 거대한 내러티브로 발전했다.
14일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는 “‘론(theory)’이 붙는다는 것은 하나의 구도, 하나의 큰 스토리라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라며 “허위조작정보는 개별 사실관계 하나하나, 단편 조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것들이 모이면 음모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송태은 국립외교원 교수는 “음모론은 어떤 사건이나 일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설명과 달리 특정 사람들이나 조직에 의해 비밀스럽게 기획된 것처럼 설명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는 누군가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정보를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으로,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와 구별된다. 반면 음모론은 사람들이 공식적 절차나 채널을 통해선 알 수 없는 정보”라며 “진위를 확인하기가 극단적으로 어렵다”고 설명했다.
◆“음모론, 다른 영역 연결하며 확산”
이런 음모론의 구조적 특성은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 분석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세계일보는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와 함께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화한 2021년 디시인사이드(디시)의 게시물을 분석해 음모론의 확산 과정과 특성을 살펴봤다. 디시인사이드는 다양한 주제별 게시판인 ‘갤러리’를 운영하며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올리는 구조라서 음모론 확산 과정을 관찰하기에 적합한 환경으로 판단됐다.

백신 접종 전후로 볼 수 있는 2021년 1∼3월 디시 코로나바이러스 갤러리 게시물 3만3488개를 분석한 결과, 의학·과학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영역과의 연결성이 확인됐다. 특히 ‘의학·과학’과 ‘정치’ 영역을 동시에 다룬 게시물은 340개로 파악됐다. 과학에서 다뤄져야 할 주제가 정치로 이어지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것이다.
상위 빈출 단어에는 ‘문재인’(928건), ‘박근혜’(220건), ‘안철수’(197건), ‘이재명’(193건), ‘이낙연’(107건), ‘윤석열’(94건) 등 정치인 이름이 다수 포함됐다. 문 전 대통령은 당시 정부 수반으로서 백신 정책의 책임자였지만, 다른 정치인들까지 자주 언급된 것은 백신 문제가 정치적 대립 구도 속에서 해석됐음을 보여준다.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 바꿔치기’를 했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코로나19 사태가 정점을 지나던 당시에 각국 정부는 임상시험 절차를 간소화한 백신을 앞다퉈 승인했다. 백신에 대한 사회적 우려와 불신이 커지자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지도자들은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해 직접 접종하는 장면을 언론에 노출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패턴’(주사기 교체)을 발견했다고 주장하고, ‘행위자’(문 전 대통령과 의료진)가 ‘연합’해 ‘비밀리에’ 백신을 바꿨으며, 이는 ‘적대적’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서사가 형성됐다. 이는 전형적인 음모론의 구조를 보여준다.
안 교수는 “음모론은 서로 다른 영역을 연결하며 확산한다”며 “과학적 사안인 백신을 정치인의 음모와 연결함으로써 평범한 의료 행위에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의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음모론은 ‘우리’가 ‘그들’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구도를 만든다. 이런 이분법적 구도가 사람들의 집단적 정체성과 결속을 강화한다”고 덧붙였다.

◆“불확실성도 음모론 키워”
디시 분석 결과 전체 게시물 중 과학·의학과 정치 등 서로 다른 두 개 이상의 주제 영역을 함께 다룬 게시물은 4.2%(1406개)였다. 비율은 낮지만, 이런 게시물들이 음모론의 핵심 서사를 형성했다. 음모론은 평소라면 관련성이 낮은 두 영역을 인위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새로운 의심의 고리를 만들어낸다.
백신 접종을 한 달 앞둔 2021년 1월, 디시 코로나바이러스 갤러리의 게시글이 폭증했다. 월별 분석 결과, 1월에는 2만763개(62.1%)의 게시물이 올라와 일평균 669.8개를 기록했다. 백신 접종이 진행된 2월(7822개, 일평균 279.4개)과 3월(4875개, 일평균 157.3개)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안 교수는 “불확실성 속에서 음모론이 확산하기 좋다”고 설명했다.
다만 송 교수는 음모론이 잘못된 정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확인된 정보들이 모여서 음모론이 되는 경우도 있다”며 “거짓이 80%이고 진실이 20%일 때, 사람들이 전체를 진실로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송 교수는 “끊임없이 정보를 분별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현대인들에게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정보의 양이 많아졌다고 해서 우리의 정보 분별력이 좋아진 것은 아니다”라며 “고급 정보에도 접근이 가능해졌지만, 이것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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