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약속해요. 당신은 운명의 상대(love of your life)와 결혼하게 될 거예요.”
미국 뉴욕의 고급 결혼정보회사 ‘어도어’에서 일하는 커플 매니저 ‘루시’(다코타 존슨)는 고객들에게 말한다. ‘평생의 짝’을 찾으려 수천달러를 지불한 이들에게 루시는 조건에 맞는 이상형을 찾아주고 첫 데이트 이후의 반응까지 철저히 관리한다. 루시는 사랑을 연결하는 큐피드이자 고객의 자존감을 북돋우는 상담사, 높은 성사율을 자랑하는 유능한 매칭 전문가다.
8일 개봉하는 셀린 송 감독의 ‘머티리얼리스트’(사진)는 현대의 사랑과 결혼이 얼마나 철저히 시장 논리 속에 놓여 있는지 들여다보는 영화다.
루시의 고객들은 동반자에 대한 환상을 품은 채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냉정하고 까다로운 기준으로 상품을 고르듯 상대를 고른다. 연봉, 나이, 키, 몸무게, 종교, 인종은 물론 머리숱까지 상세하게 기재된 체크리스트를 바탕으로 ‘협상 불가 조건’과 ‘절대 안 되는 요소’를 강조하며 깐깐한 소비자처럼 행동한다.
루시는 체크리스트의 조건과 모호한 매력을 조합해 ‘사랑’을 포장하고 세일즈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닌 상품, 결혼은 마법이 아닌 쇼핑이다.

정작 루시가 사랑 앞에서 흔들린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30대 후반 나이에 무일푼으로 배우의 꿈을 좇는 옛 애인 ‘존’(크리스 에번스), 1200만달러짜리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사모펀드 매니저 ‘해리’(페드로 파스칼) 두 남자를 두고 루시는 갈등한다. 해리는 재력, 키, 외모, 매너까지 갖춘 ‘유니콘’ 같은 존재지만 완벽한 조건이 곧 사랑에 빠지게 하는 만능열쇠는 아니다.
영화는 사랑이 비즈니스가 된 시대, 자신을 가공해 시장가치를 높이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누군가는 코와 가슴에 보형물을 넣고, 누구는 수십만달러에 달하는 키 크는 수술을 감행한다.

극 중 루시는 “인류 역사상 결혼은 언제나 거래였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지참금이나 가축 몇 마리였다면, 지금은 조건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것이다. 영화는 ‘낭만적 사랑’의 민낯을 외면하지 않고, 21세기 대도시에서의 연애와 결혼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전작 ‘패스트 라이브즈’(2023)로 제96회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던 송 감독은 실제 6개월간 커플 매니저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 시나리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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