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검 들고 고통 호소한 장면 압권
국립심포니 반주도 손꼽히는 호연
국립발레단이 안무가 존 노이마이어의 ‘인어공주’를 13∼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선보였다. 지난해 한국 초연보다 더 깊어진 해석과 주역 조연재의 춤과 연기가 갈채를 받은 무대였다.
무대는 ‘시인의 눈물’로 시작한다. 왕자를 사랑하지만 결혼 소식에 절망한 시인의 눈물은 바닷속으로 흘러들어 인어공주를 탄생시킨다. 원작자 안데르센이나 안무가의 분신 같기도 한 시인의 눈물에서 태어난 인어공주는 숙명적으로 왕자를 사랑하게 된다.

15일 공연에서 인어공주로 나온 조연재는 입단 7년 만인 올해 수석무용수로 수직상승한 발레 스타답게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과 열정을 입증했다. 지난해 국내 초연 무대보다 한층 더 성숙한 인어공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바닷속에서 유영하는 첫 장면에서는 팔과 몸통이 물결처럼 흘러 원초적이고도 자유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바다마녀의 마법으로 지느러미를 잃고 다리를 얻는 장면에서는 처절한 고통이 온몸으로 표현됐다. 몸을 비틀고 바닥을 구르며 한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칼날에 찔린 듯 비명처럼 일그러지는 모습은 관객을 숨죽이게 했다. 작은 동작 하나에도 상징이 부여되는 노이마이어 특유의 안무 언어가 배우의 몸을 통해 새롭게 발화하는 순간이었다.
육지에서의 첫 발걸음은 서툴고 불안정했지만, 그 어색함조차 무대 언어였다. 걷는 것조차 낯설어했던 순수무구한 존재로서 단검을 부여잡고 괴로워하다 힘든 선택을 하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비교할 만한 다른 무대가 떠오르지 않는 독보적 연기였다.
시인 역의 변성완도 고독과 갈망을 섬세하게 그려냈고, 바다마녀 곽동현은 강렬한 카리스마로 공연 내내 관객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이먼 휴잇이 지휘한 국립심포니 반주도 손꼽힐 만한 호연이었다. 러시아 출신 작곡가 레라 아우어바흐의 작품이 지닌 매력을 잘 전달했다.
특히 낯선 전자악기 테레민의 공기를 휘저어 연주하는 듯한 기묘한 음색은 바이올린의 불협화음과 섞이며 일렁이는 바닷속을 음향으로 구현했다. 깔끔한 무대가 인상적이었으나 1막에서 너울거리는 물결을 표현한 대형 선 조명의 일부 고정이 풀려 곡선 일부가 어그러진 건 옥에 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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